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인재 양성이 4차 산업혁명의 성패를 좌우할 키(key)로 부상하면서 미국·중국·유럽 등 글로벌 대학들이 AI 인재 양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버드·스탠퍼드·MIT 등 미국 명문대들은 지난 2000년대 후반부터 AI 교육에 최적화된 강좌를 제공해왔다. UC버클리가 1학년 1학기 과목으로 개설한 데이터사이언스에는 1,500여명의 학생이 몰렸을 정도다. 중국은 내년까지 AI 복합전공학과 100개, AI학교 및 연구소 50개 개설을 골자로 한 ‘고등교육기관 AI 혁신행동계획’까지 내놓았다. 반면 교육개혁이 지지부진한데다 각종 규제로 신산업 혁신의 발목이 잡힌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서울대·KAIST 출신 석박사급 AI 인재들이 해외로 유출되면서 ‘AI 인재 공동화’가 우려되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기술로 꼽히는 빅데이터·AI·자율주행·머신러닝 등을 기존 학문과 산업·공공 분야에 활용할 수 있는 인재 양성을 목표로 내년 3월에 문을 연다. 2015년부터 대학원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설립과정을 도맡아 진두지휘해온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설립준비단장은 이를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요구하는 ‘양손잡이 인재’의 요람으로 만들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는 20일 서울대 공학관 연구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4차 산업혁명은 사회대변혁을 위한 행군”이라며 “서로 다른 전공과 배경의 인재들이 한데 모여 데이터사이언스라는 공통의 언어로 미래 먹거리를 찾아 나서고, 이들의 도전이 씨앗이 돼 열매를 맺는 선순환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의 설립 취지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초래할 엄청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AI 못지 않게 데이터사이언스가 중요하다. 각 분야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분석, 활용해 이를 기반으로 직접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데이터사이언스 능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데이터사이언스가 모든 산업의 기반이 되면서 교육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고 있는데 아직 국내에는 이를 제대로 가르칠 교육기관이 전무하다. 2015년 서울대 빅데이터연구원에 있을 때부터 (데이터사이언스 교육기관 설립 방안을) 구상했고 정부 등 이해관계자들과 논의하는 과정에서 허브 형태의 대학원으로 만들기로 의견을 모았다. 학부는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묶여 정원을 늘리기 힘든 상황인 만큼 상대적으로 (정책이나 전공별 형평성 등) 마찰이 적은 대학원을 설립해 전공과 상관없이 공부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로 했다. 아울러 별도의 학부를 만들면 또 다른 형태의 ‘사일로(silo·조직 안에서 담을 쌓고 외부와 소통하지 않는 부서)’가 될 가능성이 큰 만큼 모든 전공에 열려 있는 대학원이 가장 합리적 선택지라고 판단했다.
-내년 3월 개교하는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에 지원자가 많이 몰렸는데.
△평균 경쟁률이 6대1을 넘는다. 석사과정 40명, 박사과정 15명이 최종 합격했는데 우수한 인재들이 많아 80명까지 뽑아도 될 뻔했다(웃음). 합격자의 절반이 2개 이상 분야를 전공했을 정도로 배움에 대한 열정도 대단했다.
-저마다 다른 전공, 다른 배경의 학생들이 한데 모여 공부하는 셈인데.
△‘양손잡이 인재’를 배출하기 위해서다. 왼손에는 경제·인문·물리 등 자신의 전공 분야를 들고 오른손에는 데이터사이언스라는 새로운 기술언어로 무장한 인재를 말한다. 일부 개발자가 아닌 ‘모든 사람을 위한 AI 시대’가 열리고 있다. 지금처럼 금융 전문가, 반도체 전문가 등 해당 분야 전문가와 정보기술(IT) 전문가가 모여 협력하는 형태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전문가이면서도 데이터를 직접 수집·분석·활용할 수 있는 양손잡이 인재가 미래의 주도권을 잡을 것이다. 서로 다른 전공의 학생들이 한 강의실에서 배우면서 파편화된 교육에서 벗어나 데이터사이언스라는 공통의 언어로 소통하는 대학교육 전환의 첫걸음을 내딛게 되는 셈이다.
-교수진 확보에 애를 먹었다고 들었다.
△AI 분야의 세계 정상급 인재 10명이 1,000명의 천재를 육성하고 1,000명이 100만명의 실무인력을 키우며 결국 전 국민을 먹여 살리게 될 것이다. 정상급 교수를 영입하기 위해 수도 없이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지만 여의치 않았다. 1970년대에는 해외에서 과학자를 모셔오기 위해 집도 주고 월급도 몇 배씩 줬다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AI 인재 시장이 과열된 상태라 50만~60만달러의 연봉을 보장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다만 내년에 하이테크 경기가 가라앉을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좋은 인재를 확보하기에) 좀 더 나은 여건이 마련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정부가 AI 분야의 교수 겸직 허용을 언급했는데.
△세계적 수준의 AI 연구자들이 100만달러 이상의 연봉을 받고 있는데 1억원 미만의 연봉으로 모시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삼성전자나 SK텔레콤·네이버 등 AI 파트를 키우는 민간기업에서의 겸직을 허용하면 상대적으로 비용 부담을 줄이고 모셔올 수 있다. 해외 대학 교수의 겸직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경우 ‘천인계획(千人計劃·박사급 해외 연구자와 글로벌 기업, 금융회사 임원급 인사 등 해외 고급인재에게 복수비자와 1인당 100만위안의 보조금 등을 지원하는 제도)’으로 외국 과학자를 유치하면서 중국에서 3개월만 연구해도 좋다고 허용했다. 미국 대학에 몸 담고 있는 한국인 AI 연구자 중에서도 1년 중 3개월은 한국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허락받았는데 오히려 우리나라에 관련 규정이 없어 들어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이 치열하지만 한국의 혁신속도는 더디기만 한데.
△AI는 규모와 스피드·타이밍이 중요한데 (정부 부처의) 중요한 의사결정마다 책임소재부터 따지는 지금의 방식으로는 속도를 내기 힘들다. 정부가 사사건건 개입하지만, 원칙이 없을 때도 적지 않다. 정권에 따라 정책 기조가 바뀌고 관료들은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니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사람이 드물다. 4차 산업혁명은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국가의 명운을 걸고 추진해도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 그런 측면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과감한 의사결정과 추진력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 마크롱은 얼마 전 2020년까지 AI 붐업을 위해 15억유로를 쏟아붓겠다고도 공언했다. 우리 역시 대통령이 앞장서 이니셔티브를 쥐고 강력한 리더십으로 추진해야 한다.
-미중 디지털 패권전쟁 속에서 한국의 선택지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미국과 중국이 디지털 패권전쟁을 벌이는 가운데 유럽과 일본이 대안으로 만들고 있는 ‘제3의 동맹’에 참여하는 방안을 고려할 만하다. 반도체 강국이라는 지금의 경쟁력을 앞세워 전략적 글로벌 파트너를 찾지 않으면 디지털 패권전쟁에서 도태되고 만다. 특히 최근 프랑스의 경우 AI 이니셔티브를 쥐기 위해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5세대(5G) 이동통신과 배터리·반도체 분야에서 월등하고 프랑스는 AI와 항공우주·에너지 분야에서 한국에 없는 기술을 갖고 있다. 5G를 사용하는 고객이 많이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한국계인 프랑스의 세드릭 오 디지털 담당 국무장관이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게 “한국은 세계 최고의 5G 테스트베드다. 한국에서 성공하면 실증이 된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은 구글이나 아마존에 점령됐다. 미국과 중국의 디지털 패권을 이겨내는 게 마크롱 정부의 주요 전략 중 하나라는 점에서도 프랑스와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시장 자체가 작다. 연구든 창업이든 성과를 내려면 반드시 글로벌 시장에서 시작해야 한다. AI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도 글로벌 접근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디지털 패권 다툼에서 주도권을 가지려면 싱크탱크 같은 조직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는데.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이 인재를 키우는 동안 대한민국 AI 성장엔진을 만들 싱크탱크도 필요하다. 정부출연연구소나 대학 등 기존 연구생태계가 각종 규제나 관행 때문에 하지 못한 연구나 사업화 등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벤처형 조직이 필요하다. 이미 해외에서는 이런 흐름이 기술발전을 견인하고 있다. 존 헤네시 구글 알파벳이사회 의장은 스탠퍼드대 총장을 맡아 민간 기부금을 유치하면서 창의적인 연구개발(R&D) 환경을 만들었고 이것이 오늘날 실리콘밸리의 중요한 토대가 됐다.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창업자 폴 앨런이 세운 ‘앨런인공지능연구소(AI2)’의 경우 프로젝트 하나의 규모만도 1억2,500만달러로 굵직한 AI 연구를 주도하면서 성과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민간 출연연구소가 나와 드라이브를 걸어야만 글로벌 기술격차를 줄일 수 있다.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영속적으로 갈 수 있는 민간 출연연구소가 답이다.
-최근 AI특성화고·빅데이터특성화고 설립 얘기도 나온다.
△국가 전체적으로 AI 및 빅데이터 교육 붐이 일어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주먹구구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 이번에 서울대에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이 만들어지지만 전국 거점지역으로 이러한 교육기관을 확산시키는 게 필요하다. 전국 거점대학 교수들이 모여 함께 데이터사이언스 교육 과정을 만들고 교육 경험을 쌓은 뒤 대학으로 돌아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대한민국 전체의 교육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이렇게 교육받은 인재들이 배출돼 초중고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 우리는 ‘AI 강국’이 되겠다는 선언은 있지만 디테일이 전혀 없다. 어떻게 실행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5년 후, 10년 후를 위한 교육제도로 확 바꿔야 한다. /정민정 논설위원 jminj@sedaily.com
He is
1958년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1991년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전기컴퓨터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1992년부터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로 재직해왔다. 2000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실리콘밸리에 실험실 벤처 ‘TIM(Transact In Memory Inc)’을 설립했다. 이후 글로벌 기업 SAP와의 전략적 인수합병(M&A)으로 글로벌 시장에 신기술 플랫폼 ‘SAP HANA’를 출시했다. 2014년부터 올 8월까지 빅데이터연구원장으로 근무하다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설립준비단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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