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정상이 북미 대화의 모멘텀을 이어가기 위해 대북제재 완화의 필요성에 공감대를 표하자 미국이 국제사회에 대북제재 이행 압박을 가했다.
불룸버그 통신은 미국·유럽연합(EU)·일본 등 유엔 회원국 20여개국이 북한 노동자 송환 이행보고서의 시한(내년 3월 22일) 내 제출을 촉구했다고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들 20여개국은 유엔 총회 의장에게 서한을 보내 북한 노동자들의 외화벌이는 국제법 위반이라며 유엔 회원국들이 이행보고서 시한을 지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불룸버그통신은 설명했다. 이는 북한이 스스로 정한 연말 시한을 앞두고 고강도 대미 도발에 나설 의지를 보인데 대한 미국의 대응 차원으로 풀이된다. 20여개국에 우리 정부는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자금줄인 해외파견 북한 노동자의 송환 이행을 위해 국제사회를 압박한 만큼 제재완화를 통해 북한의 대화 이탈을 막으려던 문재인 대통령의 ‘플랜 B’구상도 난항이 예상된다.
전날 문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국가 주석과 만나 북한의 수산물·섬유 수출 금지와 해외 파견 노동자 송환에 대한 제재해제 등의 내용을 담은 중러의 결의문 초안에 ‘주목한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청와대 관계자가 이와 관련 “싱가포르 북미 정상의 합의사항이 동시적·병행적으로 이행돼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고 밝힌 점을 볼 때 문 대통령도 사실상 제재완화의 필요성을 인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이 제재완화를 통한 북미 비핵화 협상 구상을 밝힌 지 하루 만에 미국이 이와 반대되는 행보를 취하면서 한미동맹 균열설도 재점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중러의 제안에 대해 미국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공조를 무너뜨리는 시도로 인식하는 만큼 문 대통령의 구상에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한국이 미국의 대북정책에 반하는 중러를 지지할 경우 탄핵정국이라는 위기에 놓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가 불편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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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미국은 북한이 대미 도발을 예고한 크리스마스가 하루 앞으로 다가오자 경계태세를 강화했다.
미국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무력도발에 대비하기 위해 한반도 상공에서 대북 감시·정찰비행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공개 정찰 활동은 북한이 소위 ‘크리스마스 선물’을 언급하며 도발을 시사한 것과 무관치 않아보인다.
이날 민간항공추적 사이트 ‘에어크래프트 스폿’에 따르면 미 공군 리벳 조인트(RC-135W)가 주말부터 이날까지 연일 한반도 상공에서 포착됐다. RC-135W는 한반도 3만1,000피트(9.4㎞) 상공을 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 언론은 미국 연방항공청(FAA)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민간 여객기들을 대상으로 연말·연초 경계경보까지 발령했다고 보도했다. 미 ABC방송은 이날 “시험 발사 위협은 민간 여객기들마저 긴장하도록 만들었다”며 자체 입수한 ‘위협 분석’에 따르면 미 항공교통 규제기관인 FAA가 “2019년 말에 앞서 또는 2020년 초에” 장거리 마시일 발사 가능성을 경고하는 경계경보를 이달 초 발령했다고 밝혔다. 이는 미 본토 타격이 가능한 ICBM 발사 등 고강도 도발 가능성을 염두에 둔 조치로 보인다고 방송은 덧붙였다.
미 조야에서도 크리스마스 연휴를 앞두고 북한의 추가 도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 국익연구소(CNI)의 해리 카지아니스 한국담당 국장은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미국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로 ICBM을 발사할 경우 미 동부시간 기준 24일 오후 6시~10시(한국시간 25일 오전 8시~낮 12시) 사이가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는 한중 정상회담이 북한의 도발을 막기엔 역부족이라며 북한은 이미 새로운 길에 대한 결심을 마쳤다고 분석했다.
/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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