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2013)’의 사이코패스 재벌 후계자부터 ‘황후의 품격’, 최근 ‘배가본드’까지 극단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한 감정연기로 안방극장에 강렬한 인상을 심어 온 배우 신성록. 주로 드라마를 통해 대중적 인지도를 높인 그는 2004년 ‘모스키토’를 시작으로 ‘드라큘라’ ‘김종욱 찾기’ ’영웅’ ‘몬테크리스토’ ‘키다리아저씨’등 수 많은 뮤지컬에 출연한 뮤지컬 배우이기도 하다. 이번 시즌에는 ‘레베카’에서 불의의 사고로 아내 레베카를 잃고 힘겨운 나날을 보내는 영국 신사 막심 드 윈터 역을 맡아 관객들을 사로잡고 있다.
“초연 때는 서른 살 정도였는데,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막심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이번에 맡게 됐어요. 원작과 같을 필요도 없고, 일부러 나이 들게 표현할 것도 없이 제가 느끼는 대로 자연스럽게 연기하고 있습니다.”
‘레베카’ 첫 공연을 마치고 최근 한남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신성록은 “스릴러이기 때문에 좀더 위험해 보이고, 과감하게 긴장감을 고조하는 연기를 선택해서 선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스릴러가 가미된 드라마로 사랑을 받은 그는 올해로 다섯 번째 시즌을 맞는 이 공연에 이번 시즌 처음으로 합류했음에도 그만의 캐릭터 해석력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레베카’는 2003년 초연된 스테디셀러로, 신성록은 대극장 공연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레베카’를 꼽을 정도로 작품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그가 맡은 막심은 영국 최상류층 신사로, 여성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두루 갖췄다. 근사한 슈트를 입은 ‘매너남’에 사랑으로 인한 상처를 가진 애틋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막심은 시각적으로 매우 멋있게 나와요. 귀족적 이미지를 갖고 있으면서 비밀에 쌓여 있어서 ‘저 남자는 대체 누구일까’ 하는 호기심을 자극하죠. 비밀스러운 남자니 당연히 매력이 있고, ‘달달’하고, 매너 있고, 나중에는 다혈질의 성격도 드러나 캐릭터 상 변화를 줄 수 있어요. 무엇보다 모두 무시하는 아무 것도 아닌 여자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밝히고 의지하는 캐릭터라는 점이 멋지죠.”
‘레베카’는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을 정도로 뮤지컬 팬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작품이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동명 영화를 모티브로 해 서스펜스와 로맨스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 한순간도 눈을 떼기 힘들다. 작품의 명장면을 꼽아 달라고 하자, 그는 세 장면이나 소개했다. “무대 오르기 전에는 막심이 아내 레베카를 잃고 남은 인생을 포기하려는 순간 이히를 만나면서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을지, 다시 평범한 사랑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 ‘놀라운 평범함’이라는 노래를 부른 장면이 좋았어요. 그런데 공연을 시작하고 보니 솔직히 마음에 드는 건 모두 댄버스 부인의 장면이었어요. 막심은 매번 공터나, 보트 보관소 구석에서 노래를 하거든요(웃음). 그래도 막심의 명장면을 꼽자면 ‘칼날 같은 그 미소’를 부르며 진짜 속마음을 드러내는 장면이죠. 이 노래를 통해서 막심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작품에서는 ‘몬테크리스토’ ‘마타하리’ 등에 함께 출연했던 옥주현과 다시 호흡을 맞춘다. 옥주현은 댄버스 부인 역을 맡았다. 그는 옥주현에 대해 “평소 목 관리하는 방법도 가르쳐주고 좋은 이야기도 많이 해주신다”며 뮤지컬 배우로서 음악적인 성장을 이루는 데 옥주현이 상당한 도움을 줬다고 전했다.
그는 올 하반기 드라마 ‘배가본드’를 마친 뒤 곧바로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에 출연하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드라마 종영 직후 뮤지컬 출연이 부담스러웠을 법 하지만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라 기꺼이 선택했다고 한다. 그는 “사실 남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제가 얻을 게 없으면 하지 않는다”라며 “‘키다리아저씨’에는 17회 정도만 출연했지만, 공연할 때마다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되는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스토리 오브 라이프’도 그가 애착을 보이는 작품이다. “배우 둘이 오롯이 이끌어가는 작품인데, 극적인 감정이나 충격을 받을 수 있는 장면이 없어요. 순수했던 시절을 느낄 수 있고 정신이 굉장히 맑아져요.” /글·사진=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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