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성장기업부 차장
또 한 해가 저물고 있다. 덕담을 하고 싶어도 우리 사회를 보면 스산하다 못해 휑하기까지 하다. 당장 연초에 북한에서 무언가를 쏠 것이라는 관측이 무성하다. 현 정부가 그토록 외쳤던 ‘영구적’ 평화의 결론이 허망하기 그지없다.
경제 전반도 암울하다. 서울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대다수 국민 가슴에 대못을 박고 있고 실물지표도 악화일로다. 기업의 ‘탈한국’행은 이제 전통 제조업과 혁신기업을 가리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으로 산업 지형이 급변하고 있음에도 소득주도성장, 공정경제 기치 아래 기업을 개혁의 대상으로만 간주하는 고국에 더는 미련이 없어서다.
마음을 더 답답하게 만드는 것은 나라가 두 동강 났다는 점이다. 보수와 진보 간에는 말을 섞기 어려운 지경까지 왔다. 문제는 시시비비를 가리는 대신 정파에 입각해 판단을 내리는 맹목적 성향의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데 있다. 가령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숱한 비리 혐의를 두고도 이를 두둔하는 자들을 보면 딱할 정도다. 이런 사람들 때문인지 문재인 정부는 ‘사과’를 모르는, ‘직진’만 아는 오만한 정부로 변하고 있다. 이제는 눈도 깜빡하지 않고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 “거시경제는 탄탄하다”며 시치미를 뗀다.
특히 정치권에서 연말에 벌어지고 있는 일을 보노라면 이 나라가 민주주의가 맞는지 의구심이 절로 든다. 의회 민주주의의 근간은 원내 교섭단체 간 논의다. 그런데 족보에도 없는 여당과 군소정당 모임인 ‘4+1 협의체’가 선거구든, 예산이든 떡 주무르듯 하고 있다. 제1야당을 빼놓고 국가 중대사를 졸속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이런 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야당 지지자로 몰아세우는 우리 사회의 당파성은 이미 그 자체로 이성을 잃었다. 모든 사안을 정파적으로 판단하는 사람들 눈에는 오직 ‘내 편’ ‘남 편’만 보일 뿐이다. 절차적 합법성, 이성에 근거한 시시비비는 관심 밖이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권력을 가진 쪽이 마음대로 국가 시스템을 농락할 수 있는 허울뿐인 민주주의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도 그렇다. 현 정부의 비리 혐의가 형체를 드러내는 판에 수사 이첩 요구권에 기소권마저 갖는 초헌법적 기관 설치를 밀어붙이는 것은 후안무치하다. 공수처는 자신의 부패를 숨기고 정적을 제거하는 등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할 가능성이 크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는 진보 하나의 날개로 날 수 있다고 여기는 ‘오만한’ 진보가 판치고 있다. 신년이면 이 정부도 집권 4년 차다. 맹목적 지지자만 쳐다보는 국정운영으로는 실패한 정부라는 오명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s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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