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과 탈세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살아있는 역사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안티도시스’라는 탈세 밀고제도가 있어 자신보다 많은 자산을 가진 사람들의 탈세를 고발하게 했고, 고대 중국에서는 세금을 피하기 위한 ‘호적 속임수’가 유행했다. 국제 금융은행을 설립해 세계적인 부호로 자리매김한 로스차일드 가문은 소득세와 상속세로 쇠퇴의 길을 걸었고, 영국의 록밴드 비틀즈도 납세를 피하려고 머리를 쥐어짰다. 오늘날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도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회사 주소지를 조세피난처에 두고 있다.
신간 ‘탈세의 세계사’는 세금과 탈세를 축으로 역사의 인과관계를 살핀 책이다. 국방력 유지, 인프라 구축 등의 재원이 되는 세금은 국가 운영의 근간이다. 고대 그리스와 이집트, 대영 제국 등 세계사에 등장했던 강대국은 모두 효율적인 조세 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반면 대로마제국의 멸망, 미국 독립전쟁, 프랑스 혁명 등 역사적인 격변의 이면에는 대규모 탈세가 숨겨져 있었다. 일본의 전직 세무조사관인 저자는 대부분의 정치적 사건 이면에 경제적인 원인이 있었으며, 그 중에서도 세금과 탈세가 큰 축을 담당했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으로 14세기 초 프랑스 국왕과 교황이 대치한 ‘로마 교황의 바빌론 유폐’는 세금 문제가 발단이 된 사건이었다. 영국과 한참 전쟁을 치르던 프랑스 왕 필립 4세는 군비 조달을 위해 영내에 있는 교회령에 세금을 부과하고 로마 교회에 헌납하던 십일조를 정지시킨다. 참다못한 교황이 필립 4세에 대해 파문의사를 내비치자 왕은 납치단을 꾸려 교황을 급습한다. 한술 더 떠 필립 4세는 로마로 빠져나가던 교회세를 프랑스에 묶어 두기 위해 교황청의 프랑스 이전을 촉구해 1309년 교황청의 승낙을 얻어내고야 만다. 이 덕분에 프랑스는 재원문제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지만 로마 교황청과 100년이 넘도록 반목을 이어가게 된다.
세금과 탈세를 통해 세계사를 두루 살핀 저자는 올바른 과세 제도가 번영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수많은 국가들이 특권 계층의 세금 회피와 이로 인한 빈부격차 심화로 국력 쇠퇴와 몰락의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그는 소비세 중심의 세금 시스템이 “국민의 경제력과 노동력을 빼앗고 양극화를 조장하는 세금”이라고 문제삼으며 “조속히 폐지하고 세금을 제대로 징수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정리한다. 1만7,000원.
/한민구기자 1min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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