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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경제학회] "슈퍼부채에 글로벌경기 취약...위기, 언제 어디서 올지 몰라"

■경제 석학들의 경고

최장기간 경기 확장세지만 평균성장률은 가장 낮아

이미 금리인하·재정확대로 추가 대응 여력도 없어

韓 등 신흥국은 더 도전적 상황 직면...내수 키워야

저금리 당분간 지속...세금인상 등 재정여력 확보 지적도

3일(현지시간) 미 샌디에이고 메리어트마키스 호텔에서 열린 전미경제학회(AEA) 연례총회의 ‘미국 경제: 성장, 침체 또는 새로운 금융위기’ 세션에 참석한 경제석학들이 청중의 질문을 받고 있다. 로버트 실러(오른쪽부터) 예일대 교수,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 밸러리 래미 UC샌디에이고 교수, 제니스 애버리 노스웨스턴대 교수. /샌디에이고=김영필특파원




3일(현지시간) 막을 올린 전미경제학회(AEA) 2020연차총회는 올해부터 재닛 옐런 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회장을 맡으면서 ‘혁신경제에서의 성’ ‘경제학과 학생 성적의 결정요인’ 같은 여성과 소수인종 관련 세션이 크게 늘었다. 옐런 회장도 “너무 많은 소수인종이 경제학계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며 “차별적 관행을 바로잡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를 두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전미경제학회에서는 인종 문제가 주목받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약 500개에 달하는 세션을 뜯어보면 구조적 장기침체의 원인과 해법, 다음 위기에 대한 전망, 미중 무역전쟁과 인공지능(AI) 같은 미래 먹거리에 대한 활발한 논의에 비중이 실린 점을 분명하게 읽을 수 있다. 특히 이번 연차총회의 꽃은 ‘미국 경제: 성장, 침체 또는 새로운 금융위기’ 세션이었다. 제프리 색스 컬럼비아대 교수,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와 함께 경제학계 ‘3대 천재’로 꼽히는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와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출신이자 국제금융 분야 석학인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 행동경제학의 대가로 2013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 같은 거물들이 총출동했기 때문이다.

이날 밸러리 래미 UC샌디에이고 교수에 이어 ‘떨어지는 금리, 늘어나는 부채’라는 주제발표에 나선 로고프 교수는 부채위기의 가능성을 경고했다. 그는 “앞으로 금융위기가 언제 어떻게 올지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면서도 “우리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종류의 빚을 갖고 있고, 특히 연금부채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는 중국 같은 신흥시장뿐 아니라 선진국도 예외가 아니라는 게 로고프 교수의 의견이다. 그는 그리스와 이탈리아 사례를 거론하면서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현재의 연금지급액과 공공지출이 들어오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며 “미국을 포함한 어느 나라든 세입이 지출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했다.

실러 교수도 장기호황이 이뤄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 되레 평균 성장률은 가장 낮다고 지적했다. 미국 경제는 이달로 127개월째 확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닷컴버블 당시의 120개월(1991년 3월~2001년 3월)을 뛰어넘는 역대 최장 기록이다. 하지만 평균 성장률은 2%대 초반으로 최저다. 그는 “최장기간이자 가장 느린 경기확장”이라며 “경제가 좋다는 그릇된 이야기(내러티브)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이 먹혀들어가고 있다는 게 실러 교수의 판단이다.





서머스 교수는 다음 위기가 왔을 때 쓸 수 있는 정책 여력이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다음 위기가 어디에서 터질지 모른다”는 로고프 교수의 말에 동의한 뒤 “우리가 아는 것은 위기에 대응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미 정책금리가 낮아 추가로 금리를 내릴 수 있는 여유가 없는데다, 금융위기 이후 재정을 확대해 추가 대응 여력도 없다는 뜻이다. 정부 지출확대를 주장해온 그는 세금인상을 통해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머스 교수는 “수요를 촉진하는 재정정책이 필요하며 적자를 늘리는 재정정책이 있어야 한다”면서 “재분배가 해답”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진보적 세금에 대한 지지자”라면서도 “다만 단순히 부유층으로부터 돈을 받아내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시장 시스템에 상당한 손상을 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지금의 저금리는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런던정경대(LSE)의 루카스 레이철은 ‘구조적 장기 저금리’ 세션에서 2000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6%였던 부채비율이 2018년 105%로 올라가는 동안 10년 만기 국채의 실질금리는 4.3%에서 0.8%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 정책이 중립금리(인플레이션 없이 잠재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는 금리)를 지난 40년 동안 3%포인트 낮춰왔다고 주장했다. 앞으로는 민간투자를 늘리고 과도한 저축을 줄이면서 잘 짜인 재정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과 자국 우선주의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많았다. 서머스 교수는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은 올해 더 도전적인 상황을 맞을 것”이라며 “내수를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율 관세의 경우 생산과 생산성을 떨어뜨리며 실업과 불평등도를 높인다는 게 국제통화기금(IMF) 조너선 오스트리의 분석이다.

이번 총회에서는 “자본주의의 생명이 다 됐다”는 극단적 비판론도 나와 눈길을 끌었다. 인도 중앙은행 총재를 지낸 라구람 라잔 시카고대 교수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와 함께 참석한 ‘자본주의 죽음의 절망과 미래’ 세션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샌디에이고=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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