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곤 전 르노닛산자동차 회장이 벌인 탈주극의 전모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일본 도쿄 자택에서 빠져나와 수많은 인파가 드나드는 기차역과 공항을 경유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본 정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곤 전 회장은 8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닛산이 자신을 축출한 회사 내 ‘쿠데타’에 개입한 것으로 의심되는 일본 정부의 인사 명단을 폭로할 계획으로 전해졌다.
7일 일본 NHK에 따르면 곤 전 회장은 지난해 12월29일 오후4시30분께 도쿄 JR시나가와역에서 신칸센을 타고 오후7시반 신오사카역에 내렸다. 그가 탄 열차는 연말 귀성인파로 거의 만원 상태였지만 두 조력자의 도움으로 감시망에 걸리지 않았다. 같은 날 오후2시30분 도쿄 미나토구 자택을 빠져나온 곤 전 회장은 약 800m 떨어진 호텔에 들어가 이들과 합류했다. 조력자 중 한 명은 미국 특수부대인 그린베레 출신의 마이클 테일러로 전해졌다.
곤 전 회장은 오사카 간사이국제공항에서 오후11시10분 개인 전용기를 타고 터키 이스탄불로 출발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그가 몰래 출국하기 위해 숨었던 대형 음향장비 상자의 사진을 공개하며 터키 경찰이 이 상자에서 곤 전 회장의 지문을 찾기 위한 조사를 진행했다고 6일(현지시간) 전했다. 곤 전 회장은 이 상자에 몸을 숨겨 공항 검색대를 지나쳤으며 상자는 이스탄불 공항 격납고에서 발견됐다.
도주를 치밀하게 계획한 곤 전 회장은 여러 국적의 10~15명으로 구성된 특별팀을 고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팀은 일본을 20회 이상 방문해 10개 이상의 공항을 미리 살폈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곤 전 회장이 탈출하는 데 수백만달러를 쏟아부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일본에서 터키로, 터키에서 레바논으로 향할 때 탑승한 개인 전세기 2대를 빌리는 데는 35만달러(약 4억780만원)의 비용이 든 것으로 알려졌다.
곤 전 회장이 감행한 탈주극의 전모가 밝혀지면서 국제적 망신을 당한 일본 정부는 뒤늦게 감시강화에 나섰다. 7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개인 비행기의 보안검사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곤 전 회장과 같은 보석 피고인을 감시하기 위해 신체에 위치정보시스템(GPS) 단말기를 장착하는 방안도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곤 전 회장은 8일 기자회견에서 사건의 전모를 모두 밝힐 예정이다. 그는 “닛산 측이 나를 상대로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것을 입증할 증거와 문서가 있다”고 폭스비즈니스에 6일 전했다. 또 회견 때 자신의 체포 과정과 관련해 배후에 있는 일본 정부 인사를 폭로할 것이라고도 했다. 곤 전 회장은 정부가 르노와 닛산의 합병을 막기 위해 자신에게 죄를 뒤집어씌웠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곤 전 회장이 어떻게 레바논에 입국했는지를 두고는 논란이 여전하다. 이와 관련해 장이브 르드리안 프랑스 외무장관은 현지 방송 인터뷰에서 “(프랑스 여권은) 내가 아는 한 사용되지 않았다”고 밝혔다고 아사히신문이 7일 전했다. 앞서 레바논 치안당국자가 곤 전 회장이 프랑스 여권으로 입국했다고 설명한 것과 배치되는 대목이다.
한편, 도쿄지검 특수부는 이날 곤 전 회장의 부인인 캐럴 곤에 대해 위증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해 발부받았다.
특수부에 따르면 캐럴은 지난해 4월 도쿄지방법원에서 곤 전 회장의 특별배임 사건 관련 증인 신문 때 허위 증언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기혁기자 coldmet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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