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가 1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의 대한제국공사관 방명록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처음으로 방명록을 작성한 한국 정부 장관은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었다. 김 전 장관은 “한민족 역사에 그 의미가 매우 중요한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의 훌륭한 복원과 보존을 감사드린다”며 “민족의 역사가 영원하듯 공사관의 역사도 영원하기를 기원한다”고 적었다.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은 1889년 2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서양국가에 설치한 외교공관이다. 16년 간 미국주재 대한제국 공사관으로 사용됐지만 1910년 을사늑약 후 일본공사가 단돈 5달러에 빼앗아 바로 10달러에 미국인에게 되팔았다. 대한제국은 이 건물을 연 예산의 절반 수준인 2만5,000달러에 매입했지만 헐값에 빼앗긴 것이다. 이후 정부와 주미 한인들의 노력으로 2012년 정부가 350만 달러(약 41억 원)을 들여 매입한 뒤 복원작업을 거쳐 2018년 5월 22일 전시관 형태로 재개관했다.
김 전 장관이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을 방문했을 당시는 행안부가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를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다. 지난해는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설립 100주년이 되는 해로 정부는 3·1절부터 광복절까지 행사를 대규모로 치렀다. 지난해 2월 10일 문희상 국회의장도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을 통한 우리 외교의 뿌리가 새로운 대한민국 100주년의 외교 역사로 이어지길 기원한다”고 적었다.
이 분위기는 지난해 10월 급변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지난해 10월 20일 공사관을 방문해 “을사늑약으로 빼앗긴 영사관을 되찾아 잘 복원한 것이 큰 의미를 갖는다”며 “다시는 빼앗기지 않는 나라, 그 누구에게도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다짐을 다시 되새기는 기회였다”고 썼다. 지난해 8월 일본이 우리나라를 반도체소재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제외한 후 대일 외교관계가 개선될 여지를 보이지 않았을 때 정부의 ‘극일’ 의지를 보인 셈이다.
11월로 들어오면서 정부 장관의 방명록은 평시적으로 돌아온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대미 외교를 시작한 역사의 공간을 기억하고 복원하기 위해 애써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고 적었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나고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한미 방위비 협상으로 연일 정부를 압박하는 상황에서 ‘무색무취’의 방명록을 적은 것으로도 풀이된다.
박원순 시장은 이날 공사관을 방문해 “기억(記憶). 고난의 시대, 당신들의 헌신을 기억하며 더 좋은 나라 만들겠다”고 방명록을 작성했다. 박 시장은 “좀 더 좋은 나라, 좀 더 강력한 나라를 위해 한미간의 우호를 좀 더 강력하게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DC=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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