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과제로 제시했던 직무와 능력 중심 임금체계를 공공에 이어 민간으로 확대하기 위한 작업에 시동을 걸었다. 고령화 등과 맞물려 호봉제를 손대야 한다는 필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직무급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공공 부문에서조차 도입을 두고 찬반 대립이 극심한 상황이다. 정부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적은 민간기업에서는 제도 도입이 더 순조롭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일단 정부는 임금체계 개편을 지원하기 위한 안내책자를 내고 일부 희망 기업에 전문 컨설팅 등을 제공할 계획이다.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은 1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통해 ‘직무·능력 중심의 임금체계 확산 지원 방향’을 발표했다. 임 차관은 올해 ‘직무 중심 인사관리체계 도입 지원사업’을 신설해 직무급제 도입을 희망하는 기업에 전문 컨설팅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기존의 공공 부문에다 철강·보건의료·정보기술(IT)·호텔·금융 등 직무급 도입을 위한 직무평가 수단이 개발된 8개 업종의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업종당 2개 기업씩 총 16곳을 지원한다. 이를 위해 예산 4억원을 편성했다. 아울러 기업의 임금체계 개편을 지원하기 위한 안내책자 ‘직무 중심 인사관리 따라잡기’를 발간해 기업에 보급한다. 책자에는 직무급을 중심으로 임금체계 개편 절차와 방식, 법률적 고려 사항, 직무분석·평가방법 등을 담았다. 한국노동연구원에서 개발한 제조업 범용 직무평가도구도 실었다.
직무급은 난이도 등 직무의 가치에 따라 임금을 주는 임금체계다. 직무급제 도입은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대표적 임금체계인 호봉제가 저성장·고령화 시대 기업의 인건비 부담에 따른 고령자 조기퇴직과 청년층 채용 여력의 감소를 야기한다는 지적이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지난해 사업체 노동력조사 결과를 보면 100인 이상 사업체 중 58.7%가 여전히 호봉제를 채택하고 있다. 반면 30년 이상 근무한 이와 1년 미만 근무자 사이 임금 격차는 3.3배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를 키운다는 지적도 많다.
하지만 가이드라인 제시 정도로 민간기업 노사를 설득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안내책자에 소개된 제조업 범용 직무평가도구의 경우 사무관리직, 생산직 각각 기술·노력·책임·작업조건 등 4개 평가요소와 하위항목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사업장마다 각기 다른 환경과 특성을 고려해 직무평가 항목을 만들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국가직무능력표준(NCS)과의 연계를 통해 직무 관련 정보를 촘촘히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공공 부문에서도 노조의 반발이 거세다. KOTRA·한국재정정보원·새만금개발공사·석유관리원 등이 직무급을 도입하기로 했지만 이 중 규모가 큰 곳은 KOTRA 정도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공공기관위원회가 지난해 출범해 임금체계 개편을 논의하고 있지만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노동계는 정부의 발표에 강하게 반발했다. 한국노총은 “수십년간 유지돼온 연공급 임금체계를 연구기관의 용역 결과에 따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과 발생은 자만”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역시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을 깎기 위한 임금체계 개악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너무 많다”고 반발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이번에 발표한 지원사업이 직무급제로의 전환을 유도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설명한다. 이를 토대로 개별 기업에서 분석 및 평가를 통해 노사가 합의할 수 있도록 일종의 예시를 줬다는 것이다. 매뉴얼 작업에 참여한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직무혁신센터 소장은 “직무급제의 도입과 임금체계 개편은 긴 호흡으로 접근해야 하며 올해 논의를 시작해도 완전히 정착하려면 10년은 걸리는 문제”라며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사회적으로 수용될 수 있도록 첫발을 뗀 것으로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임 차관도 브리핑에서 “반대 의견이 너무 강하면 도입할 수 없다는 것을 충분히 봤다”며 “경사노위 논의를 통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박준호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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