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격 제안한 개헌을 두고 그가 오는 2024년 퇴임 후에도 권력을 쥐기 위한 사전작업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국정연설에서 의회 권한 강화, 대통령 중임 제한 강화, 대통령 자문기구 국가위원회 권한 강화 등을 골자로 한 부분개헌을 제안했다. 푸틴 대통령은 헌법 내 연임 조항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 공감한다면서 3연임 금지 조항을 명확히 할 뜻을 내비쳤다. 이는 ‘동일 인물이 계속해서 2기 이상(세 차례 연달아) 대통령직을 연임할 수 없다’고 명시한 현행 헌법 조항 중 ‘계속해서’를 삭제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연속 3연임은 물론 연임 후 물러났다가 복귀할 수도 없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푸틴 대통령은 2024년 연임을 마친 뒤 더 이상 대통령직을 이어갈 수 없게 된다. 그는 지난 2000년부터 2008년까지 4년 임기 대통령직을 연임하고 3연임 금지 조항 때문에 총리로 물러났다가 2022년 6년 임기의 대통령에 복귀한 뒤 2018년 재선에 성공했다.
얼핏 보면 ‘차르(황제)’ 푸틴 대통령이 종신집권을 포기한 것 같지만 그가 권력을 이어나가기 위해 교묘한 술책을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경제 악화, 미국의 제재로 민심이 악화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대통령직은 내려놓되 다른 방법으로 권력을 유지하려 한다는 것이다. CNN은 의회 권한 강화는 실세총리 복귀를 위한 사전 작업이며 국가위원회 권한 강화는 국가위원장으로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기 위한 조치라고 해석했다. 이날 내각이 총사퇴한 뒤 그가 정치경험이 없는 미하일 미슈스틴 연방국세청장을 후임 총리로 지명한 것도 이러한 배경으로 풀이된다.
푸틴 대통령이 배후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푸틴이 공식직함 없이 1인자 역할을 했던 덩샤오핑 중국 최고지도자나 총리에서 물러난 뒤 고문장관을 지낸 싱가포르 지도자 리콴유의 모델을 따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러시아 크렘린궁 보좌진 출신인 알렉세이 체스나코프는 “어떤 지위에 오를지 확실하지 않지만 푸틴이 ‘넘버원’ 역할을 유지할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고 내다봤다.
‘2인자’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는 30%대의 낮은 지지율 속에 불명예 퇴진한 뒤 푸틴 대통령이 제안한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을 맡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이날 개헌에 힘을 싣기 위해 사퇴한다고 밝혔지만 부정축재 논란과 경기후퇴에 대한 책임을 지고 경질될 것이라는 해석이 제기돼왔다.
/김창영기자 kc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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