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체로 사람의 내면을 읽는 기술인 필적학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등 유럽을 중심으로 번성했다. 이는 필적이 사람의 성향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것을 의미한다. 서예 등 필체 연습으로 인격 수양을 하는 것은 동서고금의 철학자와 작가들을 통해 그 효과가 입증됐다. 필체가 바뀌면 내면이 변화하는 것을 뜻한다. 필적을 보면 그 사람의 현재와 미래가 보이는 것을 넘어 필적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는 것은 과연 사실일까.
신간 ‘필체를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는 필체를 보고 인물의 성격, 취향, 욕망을 분석하는 필적 감정서다. 저자인 구본진 박사는 국내 유일의 필적 전문가다. 검사 출신인 그는 범죄 피의자들의 필체를 보고 사건 해결의 중요한 단서를 포착한 뒤 처음 필적에 관심을 갖게 됐다. 범죄자들의 글씨체는 일반인들과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독립운동가의 친필 컬렉터로 활동하면서 필적학을 연구하는 학자로까지 발전했다. 주로 원하는 인간상을 설정하고 거기에 맞는 글씨체를 바꿔 인생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연구해왔다.
책은 공부 잘하는 글씨, 일 잘하는 글씨, 존경받는 글씨, 부자가 되는 글씨, 리더가 되는 글씨체가 따로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수험생일 때는 합격하는 글씨를 쓰다가 회사에 들어가면 일 잘하는 글씨를 쓰고 지위가 올라가면 리더의 글씨를 써야 한다고 조언한다. 예를 들어 큰 부자들의 필체에는 공통점이 있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는 ‘ㅁ’의 오른쪽 윗부분을 둥글게 쓰고 마무리를 확실하게 닫는 특징을 보인다. 이런 사람들은 빈틈이 없기 때문에 일을 확실하게 끝맺고 근검절약하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책에는 기업의 CEO부터 독립운동가, 학자, 대통령, 연예인, 스포츠 스타까지 유명인의 필체 도판 40점과 그 사람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각이 별로 없는 글씨를 쓰는 사람은 성격이 밝고 원만하며 기획, 영업 등 창조적인 업무가 적합하다거나, 글씨에 전혀 모가 나지 않고 마무리가 약하면 융통성은 있지만 계획성과 끈기가 부족해 번 돈을 지키기 어렵다는 식이다.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필적에 대한 설명도 담겨 있다.
책은 글씨 연습을 통해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글씨체를 바꾸는 방법으로는 롤 모델의 필체를 그대로 따라 쓰는 것과 자신의 필적 특징을 부분적으로 바꾸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내가 원하는 모습에 조금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 근거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글씨는 손이나 팔이 아닌 뇌로 쓴다. 글씨를 ’뇌의 흔적‘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그렇기 때문에 글씨체는 바로 그 사람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글씨체에 성격, 성장 과정, 취향, 질병, 빈부가 집약돼 있기 때문이다.” 1만4,800원. /최성욱기자 secret@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