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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어르신들이 주로 모이는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은 평소보다 한적했다. 지난주에 비해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확산되자 어르신들이 외출을 자제한 탓이다. 이날 공원에 있던 10명가량의 어르신 가운데 절반 이상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산책을 하거나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눴다. 출근길에 나선 시민 대부분이 마스크를 착용한 모습과 대조를 이뤘다. 공원 내 관리소 앞에는 신종 코로나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고 그 옆에 손소독제 하나가 놓여 있었지만 지하철이나 버스 등에 비치된 무료 배포 마스크는 따로 찾아볼 수 없었다.
서울시가 방역 취약계층에 마스크 240만장을 배포하는 등 신종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적지 않다. 방역물품 지원과 홍보가 주로 시설·기관 위주로 이뤄지다 보니 비이용자는 마스크나 손소독제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달 28일 재난관리기금 167억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하는 등 신종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대책의 일환으로 노숙인·장애인·노인 복지시설, 어린이집 등 취약계층에 마스크 240만장과 손소독제 등을 추가 보급하기로 했다. 대한적십자사도 조손가정이나 독거노인 등 재난 취약계층에 마스크 2만장을 배부하기로 했다.
하지만 방역물품 지원이 주로 장애인·노숙인 시설이나 주민센터 등 기관을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이들 손길이 닿지 않는 일부 계층에서는 여전히 방역물품 수급에 경제적 부담을 느끼고 있다. 이날 탑골공원에서 만난 연모(74)씨는 “복지관에 가입하면 마스크를 주지만 복지관 드나들면서 쓰는 부대비용이 부담스러워 여태 가입하지 않았다”며 “개인적으로 구입해 쓰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연씨와 같이 공원을 찾은 박모(76)씨는 복지관에 가입한 터라 마스크 수급에 큰 어려움은 없다고 했다.
같은 날 서울역광장에서 만난 노숙인 30여명 가운데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 이들은 10명도 채 되지 않았다. 게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는 노숙인들 상당수는 며칠에 걸쳐 여러 번 착용한 듯 마스크에 얼룩이나 때가 묻어 있었다. 임춘식 전국노인복지단체연합 회장은 “오늘 무료급식 때 30여명의 어르신들이 왔지만 마스크를 낀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며 “여전히 공식적인 복지전달체계에서 소외된 노인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당장은 일거리가 있지만 급여가 많지 않은 차상위계층 어르신들도 최근 급등한 마스크 가격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소비자시민모임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소셜커머스와 오픈마켓 5곳의 마스크 한 장당 평균가격은 지난 2018년 4월에 비해 KF94는 2.7배(3,148원), KF80(2,633원)은 2.4배 상승했다. 탑골공원에서 시설·문화재를 관리하는 계약직 근로자 김모(73)씨는 “일이 없는 노인들이야 경로당 같은 데서 마스크를 무료로 받지만 우리는 돈 좀 번다고 제외된다”며 “마스크 가격이 계속 올라 하나로 해질 때까지 며칠을 써야 할 판”이라고 덧붙였다.
장애인·노숙인 시설 및 기관 등을 중심으로 마스크·손세정제 등을 배부하고 있지만 폭증하는 일선 수요에 비하면 절대수량은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노원구보건소의 한 관계자는 “최근 서울시에서 받은 물량도 한참 부족하고 질병관리본부에서 오는 물품도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선관 돈의동 쪽방상담소 실장 역시 “지금 당장은 다행히 노숙인들에게 무리 없이 용품들을 전달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서도 “국면이 장기화하면 머지않아 수급에 차질을 빚게 될 것”이라고 했다.
/허진·김현상·손구민기자 h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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