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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서프러제트





1912년 3월 어느 날 영국 런던의 중심가 피커딜리 거리에서 유리창이란 유리창은 모조리 박살 났다. 웨스트민스터 국회의사당 앞에서 여성 참정권 요구 시위를 벌이던 200여명의 여성들이 거리에서 벌인 일이었다. 여성 참정권 운동이 10여년간 계속됐지만 영국정부가 아무런 대답을 내놓지 않은 데 대한 항의 표시였다. 여성들의 시위는 갈수록 과격해졌다. 가두시위와 연설은 물론 우체국 편지 불태우기, 건물 방화, 단식투쟁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영국정부가 전시체제에 협력하는 대가로 전후에 참정권 준다는 약속을 하기에 이른다.

참정권은 17~18세기 서유럽에서 시민혁명으로 절대왕정이 붕괴되고 민주주의가 대두되면서 주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양에도 가부장문화가 강해 여성에게는 참정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여성 참정권 요구 운동은 프랑스에서 시작돼 퍼졌고 영국에서 먼저 결실을 보았다. 1918년 일단 30세 이상 여성 가운데 재산이 있는 여성 등을 대상으로 부여됐다. 21세 이상 남녀동등 참정권은 1928년에야 이뤄졌다. 미국에서는 1920년에, 프랑스에서는 1944년에 참정권이 주어졌다. 우리나라는 1948년 헌법이 제정되면서 인정했다. 서프러제트(suffragette)는 참정권을 뜻하는 ‘서프러지(suffrage)’에 여성을 의미하는 접미사 ‘ette’를 붙인 것으로 여성 참정권 운동을 벌였던 이들을 일컫는다. 그들이 주로 입었던 흰옷은 ‘서프러제트 화이트’로 불리며 여성 참정권의 상징이 됐다. 이후 영미 여성 정치인들이 이를 즐겨 입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난 4일(현지시간) 새해 국정연설 현장에서 ‘흰옷 물결’이 눈길을 끌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민주당 여성 의원들이 입은 것이다. 미국 여성 참정권 획득 100주년을 기념하고 여성인권을 꾸준히 개선해 나가는 데 대한 연대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일부 미국 언론들은 “여성 차별 발언·행동을 해온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조용하지만 강력하게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걱정스러운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다. 이런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버릇이 돼 버린 여성혐오 발언을 멈출까.
오현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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