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초연부터 호흡을 맞췄던 배우 신구와 손숙이 네 번째로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에서 함께한다. 팔팔한 20~30대도 어려워하는 원캐스트로 한 달 넘게 관객들과 만나는 두 원로배우는 대본 리딩부터 동작까지 곁들이는 일명 ‘서는 연습’까지 빠짐없이 참여하는 열정과 성실함으로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한창 리허설 중인 두 배우에게 언제까지 무대에 설 것이냐고 묻자, 손숙은 “언제까지라니요? 저희 현역이에요. 농담으로 우리가 ‘대학로 방탄노년단’이라고 하고 다니는 걸요”라고 웃어넘긴다. 드라마와 영화를 비롯해 연극까지 모든 장르를 넘나들며 명연기를 선보이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절로 느껴졌다.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는 간암 말기 환자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간성혼수 상태에 있는 아버지(신구)를 지켜보는 가족의 일상을 담담하게 담아낸 극이다. 공부 잘해서 성공한 첫째 아들은 미국에 가 있고, 말썽이나 피우던 둘째 아들 내외(조달환·서은경)가 어머니 홍매(손숙)와 아버지의 마지막을 함께한다. 죽음을 앞둔 까닭에 공연 내내 누워있어야 하는 신구의 섬세한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정말 어려운 연기에요. 간성혼수 상태라서 별다른 대사 없이 감정을 연기해야 하거든요. 누워있기만 한 것도 아니에요, 조금씩 아주 미세한 움직임과 떨림을 연기해요.” 손숙은 “신구 선생님의 명연기를 우리가 언제 보겠나”라며 극찬했다. 그의 조용하고도 묵직한 연기는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슬픔을 묻고 죽음을 앞둔 아들을 담담하게 바라보며 일상을 보내는 아버지 역에서의 연기와 자연스럽게 오버랩 된다. 스크린 속 클로즈업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선보일 깊고 섬세한 연기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다.
신구가 관객들로 하여금 가장으로 열심히 살아온 아버지를 향한 수많은 감정을 담담하게 느끼게 한다면 손숙은 반대다. 손숙은 숨죽여 슬퍼하는 관객들을 목놓아 울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아버지가 곧 돌아가실 것 같다고 형에게 전화를 건 둘째에게 왜 말을 했느냐고 혼을 내요. 한 달 후에나 온다는 큰아들에게 대한 섭섭함을 그렇게 푸는 거죠. 진짜로 둘째 아들을 혼내는 게 아니에요.” 자식이 잘못해도 감싸는 어머니의 마음과 자신의 불효를 떠올리며 관객들은 눈물을 흘린다. 담백하게 감정을 끌어 올리면서 감동을 극대화하는 두 배우의 연기는 이 작품이 벌써 네 번째 시즌을 맞게 된 커다란 동력이 아닐까 싶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를 지켜보는 가족이라는 무거운 소재 탓에 관객들이 다소 불편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신구는 특유의 말투로 “안 보면 지들이 손해지, 뭐”라며 ‘쿨’한 자신감을 내보였다. ‘니들이 게맛을 알어?’라는 CF 속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답변이다. 손숙은 “요즘 웰다잉에 꽂혀 있다”며 “암 말기면 말기답게 품격있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작품에서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장면이 나오지는 않는다”며 “그게 참 좋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죽음을 다뤘지만 자극적인 작품은 아니라는 것이다.
국립극단 시절 선후배로 만난 두 배우 사이에는 오래도록 함께해온 세월과 더불어 서로에 대한 믿음과 존경이 켜켜이 쌓여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는 배우로서의 태도에 대한 서로의 평가에서도 드러났다. 손숙은 “20년 전에도 그랬지만, 신구 선생님은 연극을 시작하면 아무것도 안 하고 작품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여전히 지키고 계신다”며 “암 환자 역이라서 이번에는 체중도 감량하신다. 그 태도가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그 말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신구가 받는다. “그건 손숙도 마찬가지다. 연극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누구 못지않다.” 오는 14일부터 3월2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사진=오승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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