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틀렸다.”
요즘 잉글랜드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에서는 축구 전문가들 사이에 때아닌 ‘반성 릴레이’가 이어지고 있다. 승격팀 셰필드 유나이티드 때문이다. 셰필드는 10일(한국시간) 홈구장 브라몰 레인에서 본머스마저 2대1로 잡으면서 리그 5위(10승9무7패·승점 39)로 올라섰다. 한 경기 덜 치른 4위 첼시와 불과 2점 차. 4위까지 주어지는 다음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이 보이기 시작했다. 3년 전만 해도 리그1(3부리그) 소속이던 팀이 유럽 최고 구단들만 초대받는 챔스의 문을 거세게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 시즌 챔피언십(2부리그) 2위로 12년 만에 1부리그에 복귀한 셰필드는 챔스는 물론 그다음 수준의 유럽대항전인 유로파리그 경험도 없다.
올 시즌을 앞두고 셰필드를 둘러싼 전망은 2부 강등이 지배적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레스터시티 등에서 뛰었던 로비 세비지를 비롯해 대니 밀스, 가스 크룩스, 스티브 니콜 등 전문가들은 셰필드가 18~20위에 머물러 한 시즌 만에 챔피언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랬던 이들이 최근 들어 하나같이 “내가 틀렸다”며 두 손을 들고 있다. 셰필드는 아스널에 1승1무를 거뒀고 첼시·토트넘·맨유와도 비겼다. 해설자 세비지는 “셰필드는 EPL에 살아남을 만큼의 골을 넣지 못할 걸로 생각했다”면서 “크리스 와일더 감독이 기적을 지휘하고 있다. 전형적인 ‘올드스쿨’ 감독이지만 마인드는 누구보다 유연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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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필드 구단의 연고지인 셰필드는 ‘스틸 시티’로 불린다. 과거 철강 산업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구단의 별칭도 ‘더 블레이즈(The Blades·칼날 군단)’다. 칼날 군단의 지휘자 와일더(53·잉글랜드)는 대장장이처럼 굳세고 믿음직스럽다. 기본을 강조하고 직선적인 축구를 선호하며 훈련 뒤에는 옛날 사람처럼 “잠이 보약”이라고 강조한다.
셰필드에서 태어나고 셰필드에서 선수로 뛰었던 와일더는 서른넷에 감독 생활을 시작했다. 2016년 8월에 셰필드 사령탑에 앉았는데 첫 시즌에 3부 우승을 이끌었다. EPL에서는 통하지 않을 것이라던 전망도 비웃고 있다. 풋볼365는 “‘올드스쿨 감독’이 ‘미러클맨’이 됐다. 2019~2020 감독상은 위르겐 클롭(1위 리버풀 감독)이 아니라 와일더가 받아야 한다”고 했다.
와일더의 간판 전술은 ‘오버래핑 센터백’이다. 3-5-2 포메이션을 기본으로 공격 때는 양 측면의 중앙수비수가 윙어처럼 공격 진영을 파고든다. 선수단 전체의 전술 이해도가 높고 모두가 이타적인 팀 플레이어이기 때문에 가능한 전술이다. 1부 승격 뒤에 큰돈을 들여 새 선수를 영입했지만 오히려 실패한 팀들과 달리 와일더는 3부 시절부터 지도한 선수 10명과 지금도 함께하고 있다. 올 시즌 교체 멤버 득점 EPL 1위 기록(6골)은 와일더의 남다른 용병술을 잘 보여준다. 이날 동점골로 역전의 발판을 마련한 주장 빌리 샤프는 “우리는 위만 바라보고 뛴다. 이제 첼시를 따라잡으러 간다”고 말했다. 와일더 감독은 “우리 팀에 입지를 굳힌 선수는 아무도 없다. 각자 더 증명해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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