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만 생민(生民)의 죄인이 되었으니 잠시도 이를 잊을 수 없다. 지금의 병이 위중하니 한마디 말을 않고 죽으면 짐은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리라. 이 조칙을 선포하여 병합이 내가 한 것이 아닌 것을 백성들이 분명히 알게 되면 이전의 소위 병합 인준과 양국의 조칙은 스스로 파기에 돌아가고 말 것이리라. 백성들이여, 노력하여 광복하라. 짐의 혼백이 어둠 속에서 여러분을 도우리라.”
대한제국의 마지막 왕인 순종이 남긴 유지다. 남양주시의 북쪽 물맑음수목원과 축령산휴양림 근처를 배회하다 남쪽으로 내려와 고종과 순종이 묻힌 홍유릉에 도착했다. 위의 구절은 인터넷을 검색해서 읽은 내용이다. 홍유릉의 주인인 고종과 순종을 그저 망해가는 왕조의 무능한 왕으로만 알고 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순종이 잠든 유릉은 의외로 규모가 크고 정비도 잘 돼 있었다.
국내 최고의 풍수학자로 알려진 김두규 우석대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조선의 모든 임금은 왕에 불과했지만 고종과 순종은 황제였으니 능의 형식부터 다를 수밖에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재미있는 것은 유릉의 주인이 셋이라는 것이다. 순종과 첫번째 황후 순명효황후 민씨가 묻힌 것은 자연스럽지만 두번째 황후인 순정효황후 윤씨도 같이 묻혀 있는 것이 신기하다. 다시 말해 한 봉분 안에 세 분을 같이 모신 동봉삼실 합장릉의 형태라는 얘기다.
옆에 있는 홍릉은 대한제국 1대 고종태황제와 명성태황후 민씨의 능이다. 홍릉 역시 기존 조선왕릉의 형식과는 다른 형태로 조성됐다. 능침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두르고 능침공간에 있던 석물(석양·석호·문무석인)들은 제향공간 앞으로 배치하고 종류와 개수를 늘렸다. 침전(제사를 준비하는 능 앞의 건물) 앞에 있는 석물도 다른 왕릉에서는 볼 수 없는 기린석·코끼리석·사자석·해태석·낙타석 등 다양한 동물이 추가돼 있다.
고종과 순종은 흥선대원군이 당대의 풍수 정만인에게 “2대에 걸쳐 황제가 나올 명당”이라는 말을 듣고 자기의 아버지인 남연군 묘를 충남 예산군 덕산면으로 이장한 끝에 얻은 아들과 손자인데, 대원군의 묘가 남양주 관내에 있어 가보기로 했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묘는 남양주시 화도읍 창현리에 있는데 생각보다 단출했다.
김 교수는 “흥선대원군의 묘는 살아생전 별장을 짓고 살던 공덕리(마포구 공덕동)에 있었는데 파주로 이장했다가 미군기지가 들어서면서 남양주로 옮기게 됐다”고 설명했다. 흥선대원군의 묘가 문화재가 아닌 경기도 기념물로만 지정된 것을 보니 사람의 운명은 노력의 소산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입맛이 씁쓸했다.
남양주 역사기행을 하면서 빼놓아서는 안 될 곳은 바로 ‘정약용 역사유적지’다.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옛 이름 마재마을)는 정약용의 고향으로 생가터와 묘지가 잘 정비돼 있다. 정약용 유적지를 돌아보려면 먼저 실학박물관에 들러 개요를 살펴보는 것이 좋다. 이곳에서 만난 박물관 직원 박성연씨는 “실학을 집대성하고 총정리한 정약용은 실학을 성리학과 유리된 학문으로 보지 않았다”며 “그는 오히려 실학이야말로 유학의 애민정신을 구체화할 수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런 정약용이 정조라는 훌륭한 군주를 만난 것 또한 행운이었다. 정약용은 사돈 이벽으로부터 천주교를 접하고, 교인이 되지는 않았지만 서양문물을 학문적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거중기를 설계해 수원 화성을 축조하는 등 정조의 총애를 한몸에 받았다. 그럴수록 정적들의 질시는 불타올라 결국 전남 강진으로 유배 길에 올랐다. 정약용은 강진에서 18년간 유배생활을 마치고 고향인 남양주로 돌아와 강진에서 연구한 업적들을 정리하며 다시 18년을 보냈다.
밝은 낮에는 남양주에 깃든 역사를 살피다가 저녁이 되기를 기다려 수종사로 향했다. 해가 질 무렵 남양주시의 최남단인 이곳에 올라 낙조에 물든 한강을 바라보기 위해서였다.
수종사는 1458년 세조의 명으로 건립된 절로 서거정은 “동방 제일의 전망을 가진 사찰”이라고 감탄한 바 있다. 이곳은 초의선사가 정약용과 교류하며 차에 관한 여러 저서를 남긴 절로도 알려졌다.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이 대한민국의 보물 제1808호로, 탑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보물 제1789호로 지정돼 있다. 수종사 뒤편 계단으로 올라서면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류하는 양평군 양수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글·사진(남양주)=우현석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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