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상사가 공개된 장소에서 부하 여직원에게 “살찐다” 등의 발언을 한 것은 성희롱으로 회사 측의 해고가 정당하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행정10부(한창훈 부장판사)는 A씨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공기업에서 근무하는 A씨는 70여차례 출장을 다녀온 것처럼 꾸며 출장비를 타내고 여직원을 성희롱한 혐의로 해고됐다. A씨는 음식을 먹으려는 여직원에게 “그만 먹어라, 살찐다”고 말하고 자신의 옛 애인을 거론하면서 “그 호텔 잘 있나 모르겠다”고 말한 것으로 조사됐다.
구체적으로는 지난 2017년 3월 식판에 밥과 반찬을 담고 있는 B씨에게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만 담아라, 살찐다”고 큰 소리로 말했다. 또 B씨가 밥을 먹고 있을 때 “너무 많이 먹는 거 아니냐, 다이어트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렇게 먹으면 살찐다”는 발언을 했다.
같은 해 4월에는 B씨에게 다가가 대구 지역 여성과 만난 이야기를 꺼내면서 “대구에 아직 그 호텔이 있나, 물론 그 여자랑 갔다는 이야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5월에는 동료 직원 C씨가 B씨에게 바나나를 건네줘 껍질을 까서 먹으려는 순간 “C씨는 먹어도 되는데 B씨는 안 된다, 살찐다”고 말했다. 이에 한 사무실 동료가 나서 A씨에게 “더 이상 그런 언급을 하지 말라”며 다그치는 상황도 벌어졌다.
A씨는 이 밖에 사내 성희롱 사건을 두고 “남자 직원이 술자리에서 그럴 수도 있는데 별일 아닌 걸 가지고 일을 만들었다”고 말하는 등 2차 가해를 하기도 했다.
1심 재판부는 성희롱 발언 등으로 해고까지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봐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2심 재판부는 “살이 찐다는 등 A씨가 (여직원에게) 외모에 관한 말을 수차례 반복적으로 했다”며 “같은 자리에 있던 다른 직원이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할 만큼 그 정도가 가볍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어 “(옛 애인 이야기는) 하급자에 대한 지도·감독 과정에서 용인되는 수준을 벗어난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성희롱 사건 대책회의에서 “성희롱의 개연성이 낮다”며 가해자를 옹호한 발언을 한 것은 2차 피해를 야기한 것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비공개 토의 과정에서 개진한 의견일 수 있다는 결론이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