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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인삼의 세계사] 원조 한류스타 '17세기 고려인삼'

■설혜심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한국인의 몸보신에 빠질 수 없는 약재가 있다면 바로 ‘인삼’일 것이다. 인삼주, 삼계탕 같은 술과 음식부터 건강기능식품, 약재까지,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인삼을 섭취한다다. 최근에는 한류 붐을 타고 아시아는 물론 미국과 유럽에서도 우리의 고려인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런데 정작 고려인삼이 유럽에 첫발을 내 딛은 시점은 1617년이다. 한류로 인삼이 인기를 얻은 게 아니라 인삼이 먼저 한국을 알린 ‘원조 한류’인 셈이다.

서구 문헌 속 ‘동양의 신비한 약초’로 불린 우리 인삼은 그 시대 서구사회에서 과연 존재는 어땠을까? 책 ‘인삼의 세계사’는 이런 질문에서 출발한다. 서양사학자인 저자는 서양의학 논고와 약전, 교역 보고서, 경제학 논고, 신문기사 등 각종 서양 문헌 속 인삼에 관한 기록을 찾아내 인삼의 역사를 복원했다.

대항해시대를 거쳐 17세기 초, 인삼은 커피, 사탕수수, 면화 등과 함께 세계 상품교역의 중심이었다. ‘동양의 신비한 약초’인 고려인삼은 1617년 일본 주재 영국 동인도회사의 상관원이 런던 본사에 보낸 통신문에 처음 등장한다. 통신문에는 “한국에서 온 좋은 뿌리를 보낸다. 여기서 이 뿌리는 은과 맞먹는 가치를 가지는데, 너무 귀해서 보통 사람의 손에는 들어오지 못하고 쓰시마 번주에 의해 무조건 일본 천황에게 보내진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약으로 간주하며 죽은 사람도 살려내기에 충분하다”고 적혔다.



일본, 남아프리카를 거쳐 영국으로 보내진 고려인삼은 이후 미국으로 건너갔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미국은 1784년 첫 수출품으로 인삼을 택한다. 미국은 한때 중국이 수입한 인삼량의 50%를 담당하기도 했다. 미국에는 심마니도 존재했다. 이로쿼이족이라는 원주민의 채삼작업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인삼의 역사는 미국의 경제적 독립과정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책은 이러한 과정이 17세기 초부터 인삼이 서양지식체계에 편입되는 과정의 일부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인삼에 푹 빠졌던 서양은 18세기 중반부터 인삼에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당시 서구 의학계에서는 인삼의 의학적 가치를 폄하하고 약전에서 퇴출하려는 움직임이 강하게 일었다. 인삼은 유효성분을 추출하기 매우 까다로운 식물로 서양의 근대 약학 시스템에 편입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유효성분 추출 실패는 결국 인삼의 활용을 위축시키는 원인이 됐다.

저자는 “인삼의 세계사는 의약학의 성패가 의약적 효능뿐만 아니라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차원에서 좌우된다는 명제를 선명하게 증명하는 사례”라며 “오늘날 거센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제대로 균형 잡힌 세계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삼 같은 상품을 인문사회학, 특히 역사적 관점에서 연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2만5,000원.
/최성욱기자 secre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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