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 관영매체와 관변학자들이 연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원지가 중국이 아닐 수 있다는 주장을 펴는 가운데 시진핑 국가주석이 직접 바이러스의 발원지를 밝히라는 지시를 내려 미묘한 파장이 일고 있다. 시 주석의 ‘진짜 발원지’ 논란이 일단은 미국을 겨냥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불똥이 한국에도 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이 코로나19 ‘역유입’을 막기 위해 적반하장 격으로 이러한 논란을 이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3일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전날 중국 군사의학연구원과 칭화대 의학원을 잇달아 방문해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을 주문했다. 이어 과학기술부와 국가위생건강위원회의 업무보고를 받고 코로나19 대응 방안 등을 지시했다. 시 주석은 “과학기술을 이용해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최종적인 승리를 거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날 발언에서 주목받은 부분은 “종합적인 계획을 세워 코로나19의 발원지와 전파경로를 연구할 것”을 지시했다는 점이다. 시 주석은 “유행병학과 바이러스 근원 조사에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등의 신기술을 활용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바이러스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갔는지를 분명하게 밝혀 정확도와 검사 효율을 높이라”고 말했다.
시 주석의 이날 발언은 최근 중국 관영매체와 관변학자들이 코로나19의 발원지가 중국이 아닐 수 있다는 보도와 발언을 잇달아 내놓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어서 배경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중국 감염병 최고 권위자로 불리는 중난산 중국공정원 원사는 지난달 27일 기자회견에서 구체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않고 “중국에서 코로나19가 처음 출현했다고 해서 중국을 꼭 발원지로 볼 수는 없다”는 주장을 처음 내놓았다. 중 원사는 지난 1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한의 시장에서 팔던 야생동물에서 비롯됐을 것이라고 추정했는데 그 말을 뒤집은 것이다. ,
이후 중국 관영매체들이 비슷한 주장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관영 글로벌타임스가 지난달 29일자에서 “코로나19와 미국 독감의 구별이 잘 안 된다”며 “미국이 발원지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관영 환구시보도 이달 2일자 논평에서 양잔추 우한대 감염병 연구소 교수를 인용해 “코로나19는 같은 시기에 동시의 여러 발원지를 가질 수 있고, 발원 동물 역시 여러 종일 수 있다”고 전했다.
중국 관영매체들이 코로나19의 발원지로 미국을 지적하는 근거는 지난겨울 미국에서 확산된 독감이다. 지난달 초 미국이 코로나19를 이유로 중국인들의 미국 입국을 사실상 금지하자 중국 외교부는 미국의 독감 희생자가 더 심각하다며 반발한 바 있다. 당시 화춘잉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1,900만명의 미국인이 독감에 걸렸으며 이 중 1만명이 사망했다는 통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코로나19의 중국 외 발원설이 중국인들에게 퍼지면서 웨이보(중국판 트위터) 등에서 한국 발원설도 나오고 있어 한중관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일부에서는 “신천지 교인이 1월 우한을 방문해 바이러스를 퍼뜨렸다”는 전후가 잘못된 주장도 나오는 상황이다.
현지에서는 갑자기 발원지 논란이 제기된 것은 해외에서의 확진자 역유입을 막기 위한 중국 지도부의 고육책이라고 보고 있다. 중국 매체를 종합하면 3일 현재 이탈리아와 이란 등지로부터 총 12건의 코로나19 역유입 확진 사례가 발견됐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최근 중국 내 코로나19 확산세가 주춤한 데 따른 긴장 완화를 다시 조이기 위해 해외 발원설을 이용한다는 추측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에 따르면 2일 하루 신규 확진자는 125명, 신규 사망자는 31명에 그쳤다. 신규 확진자는 중국 당국이 공식 집계를 시작한 1월21일 이후 최저치다. 현재까지 누적 확진자는 8만151명, 누적 사망자는 2,943명로 집계됐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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