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관이 수입 물품에 대한 과세가격을 조사해 관세를 부과한 후 똑같은 물건에 대해 2차 조사를 통해 관세를 부과하는 건 위법하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관세법에서 금지한 ‘중복조사’에 해당한다는 이유다. 글로벌 담배 회사 필립모리스의 한국법인인 한국필립모리스는부산세관을 상대로 낸 약 58억9,700여만원 규모의 관세 취소 청구소송의 상고심에서 승리하며 세금을 돌려받기에 유리한 위치를 점했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한국필립모리스가 부산세관을 상대로 제기한 관세등부과처분취소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고등법원에 환송한다”고 6일 밝혔다. 재판부는 “부산세관이 2009년 8월부터 2011년 3월까지 실시한 조사행위들이 관세법상 조사에 해당한다”며 “한국필립모리스의 사업장을 수차례 방문하고 서면으로 질문하고 자료제출을 요구한 점은 재조사 금지 규정에 위반된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2차 조사 대상으로 삼은 각초는 이미 1차 조사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과 동일하다고 덧붙였다. 부산세관이 1차 조사 결과를 통지하며 로열티와 관련된 추가자료 요청이 있을 수 있다고 기재했지만 이것만으로 원칙적으로 금지된 재조사가 허용된다고 볼 수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한국필립모리스 측은 부산세관 측이 지난 2003년부터 2007년 사이 수입해 온 각초(잎담배를 잘게 자른 것)에 대해 추가 조사를 거쳐 관세를 추징한 게 구 관세법에서 금지한 재조사에 해당한다며 소송을 냈다. 이미 1차 조사를 거쳐 2008년 4월에 과세처분을 내렸는데 기획심사를 진행 중이라며 자료제출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당시 부산세관은 2차 조사를 통해 한국필립모리스가 2006년부터 2007년까지 담배의 제조·판매를 위해 스위스 본사에 지급한 상표권사용료(로열티)를 추가해 관세처분을 또 내린 바 있다.
앞서 1·2심은 나란히 부산세관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2008년 과세 당시 유보했던 로열티 관련 조사를 최초로 진행한 것이라 중복조사를 한 거라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2심 재판부도 “실제 과세가격에 로열티를 가산할지 여부만 추가로 조사한 점을 종합하면 조사 대상이 실질적으로 서로 달라 중복조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박준호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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