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이 코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전국 곳곳이 치열한 경쟁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여러 격전지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지역이 있다면 역시 ‘종로’. 이낙연과 황교안이라는, 국내 2대 정당을 대표하는 두 명의 정치인이 출마해 박빙의 승부를 겨루는 중이거든요. 하지만 사실 종로는 이번뿐 아니라 매 선거 때마다 가장 높은 관심을 받는 지역으로 손꼽힙니다. 따지고 보면 서울의 한 지역구에 불과한 종로는 언제부터, 뭐 때문에 ‘정치 1번지’로 불리게 된 걸까요.
우리가 종로에 주목하는 이유 첫째, 종로를 차지하기 위한 혈투에 언제나 대권 주자급이나 원로급 정치 거물들이 출사표를 던져왔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이명박, 손학규, 정세균, 오세훈, 홍사덕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정치인들이 이곳에서 승부수를 걸었습니다. 이번 선거에도 4선 국회의원 출신이자 현 정부의 초대 총리로 맏형 역할을 톡톡히 해왔던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박근혜 정권의 마지막 총리이자 당 대표를 지내고 있는 황교안 미래통합당 후보가 ‘빅 매치’를 벌일 예정입니다. 두 사람은 현재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 여권 1위와 야권 1위를 기록하는 인물들이기도 합니다. 2년 뒤 치러질 대선을 앞두고 정치 인생을 건 승부를 펼치게 되는 거죠.
그렇다면 정치인들은 왜 ‘종로 사수’에 목숨을 걸게 된 걸까요. 그건 종로가 가진 역사성과 상징성 때문입니다. 사실 종로는 조선 시대부터 정치·행정·외교의 중심지였습니다. 조선 왕의 거처인 경복궁이 있고, 광화문 앞을 가로지르는 세종로 양쪽으로 이·호·예·병·형·공조의 육조 관아가 자리 잡고 있었죠. .정치적 중심지로서 종로의 지위는 일제 강점기를 지나 광복 후인 현재까지 이어지는 중입니다. 지도를 보면 경복궁과 나란히 대한민국 대통령의 관저인 청와대가 자리 잡고 있지. 외교부와 통일부 등 정부청사도 자리를 지키며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사실 종로는 실제로도 ‘정치 1번지’, ‘대한민국 1번지’입니다. 1968년 1월 21일 남파 무장공작원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했던 일명 ‘김신조 사건’이 벌어진 후 한국에는 주민등록번호 시스템이 급하게 만들어졌는데 지역 코드를 설정하며 청와대가 있던 서울 종로구 효자동을 0001, 즉 1번으로 설정한 거죠. 이후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던 장기영 후보가 “저의 뼈는 금융인(한국은행 이사), 피는 언론인(한국일보·서울경제 사장), 살은 체육인(IOC위원)인데, 이제 정치 일번지에서 정치인의 얼굴을 만들고 싶습니다”라는 유세를 하며 ‘정치일번지’라는 말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종로구는 아직도 선거 개표 방송 등에서 전국 253개 선거구 가운데 가장 먼저 이름이 불리는 ‘1번’ 지역구로 자리매김하고 있죠.
이런 역사성과 상징성이 결합해 종로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은 언제나 치열했습니다. 1948년 5월 치러진 제헌 선거 당시 종로에 출사표를 던진 후보는 무려 17명에 달했다고 하죠. 종로를 발판 삼아 화려한 정치 인생을 펼친 인물들도 많았습니다. 특히 종로는 3명의 전직 대통령을 배출한 선거구라는 명성을 갖고 있는데 윤보선 전 대통령이 종로에서 3·4·5대 국회의원을 지낸 후 대통령이 됐고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도 종로에서 금배지를 달았습니다. ‘장군의 아들’ 김두한과 내각책임제였던 제2공화국의 총리를 지낸 장면 선생, 이종찬 전 국정원장도 종로를 거친 후 정치 인생을 꽃피웠죠.
정치인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언론 역시 선거 때마다 ‘종로’를 주목하는데 그건 바로 이곳에서 종종 ‘각본 없는 드라마’가 펼쳐졌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회자 되는 선거가 있으니 바로 1996년 15대 총선.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신한국당 후보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통합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는데 이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을 이겼습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선거비용을 지나치게 많이 쓴 나머지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에 회부됐고 의원직 상실형이 최종 선고되기 직전인 1998년 2월 스스로 의원직을 사퇴했습니다. 1996년 선거의 패배로 정치 낭인 생활을 하던 노 전 대통령은 그해 7월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당선하며 화려하게 재기하죠.
정세균 국무총리의 스토리도 드라마틱힙니다. 정세균 총리는 2012년 19대 총선에서 4선을 뒷받침해줬던 고향 전북 무주·진안·장수를 뒤로 하고 아무런 인연이 없던 종로에서 승부수를 띄워 극적으로 승리하죠. 심지어 상대는 6선의 거물 정치인 홍사덕 새누리당 후보였습니다. 20대 총선에서는 서울시장 출신의 오세훈 후보와 만나 또 이겼죠. 이기기 어려울 거라던 선거에서 모두 이긴 정 의원은 ‘대통령 빼고 다 해본’ 정치인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낙연 전 총리가 자신을 4선 의원으로 만들어준 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군을 뒤로 한 채 이번 선거에서 종로 출마를 선언한 것도 정 총리를 의식한 행보라는 얘기도 나오죠.
이런 과정을 거쳐 종로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대망을 꿈꾸는 정치인들이라면 한 번쯤 출마를 생각하는 지역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하지만 종로의 민심이 반드시 총선·대선의 승리로 이어지는 건 아닙니다. 15대 총선에서 보듯 종로를 먼저 차지한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었지만 대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먼저 잡았습니다. 또 종로는 오랜 기간 보수 정당의 표밭이라는 인식도 많았습니다. 1988년 이후 진보 정당 후보가 종로구에서 금배지를 단 건 노무현 전 대통령(보궐선거)과 정세균 총리가 유일하죠. 이번 선거, 여론조사 상으로는 이낙연 후보가 앞선 것으로 나타나지만 실제 종로 민심의 향방을 단언하기는 어렵다는 말입니다. 과연 새로운 종로 스토리의 주인공은 누가 될까요. 같이 함께 지켜시죠.
/김경미기자 km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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