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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카뮈 '페스트'





제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던 1940년대 프랑스령 알제리 북부도시 오랑(Oran). 흑사병으로 불리는 페스트가 갑자기 창궐해 도시가 폐쇄되고 시민들은 공포에 질린다. 하루에도 수십·수백 명씩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막장 상황이 1년 동안 이어진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의 기본 상황 설정이다. 오랑은 마치 코로나19로 봉쇄된 중국 우한과 신천지 교인들로 감염자 폭증 사태를 맞은 대구를 오버랩시킨다.

카뮈는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그가 살던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에서 이 소설을 구상했다. 당시 지병인 폐렴을 앓았던 그는 나치가 점령한 파리에서 지하신문을 만들며 저항하기도 했다. 전쟁·질병·고립·투쟁 등 그가 겪은 다양한 체험을 소재로 전쟁 후인 1947년에 ‘페스트’를 발표했다. 이 소설은 피할 수 없는 재난 속에서 의사·기자·신부·범죄자 등 온갖 인간 군상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여준다. 나아가 죽음이라는 엄혹한 운명에 굴하지 않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 실존도 그려냈다. 그래서 페스트는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작이자 재난 소설의 효시로 평가받는다. 페스트는 천연두·인플루엔자와 함께 역사에서 가장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인류의 3대 질병이다. 14세기 몽골군의 서방 원정 때 함께 이동한 쥐들이 퍼뜨렸다는 페스트는 유럽을 최대 위기로 몰아넣었다.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1 내지 절반이 사망했다는 얘기도 있다. 어원인 라틴어 ‘Pestis’가 전염병을 가리키는 보통명사였는데 특정 질병을 칭하는 고유명사가 됐을 정도다.



요즘 카뮈의 소설 ‘페스트’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국내 서점의 판매가 전년 대비 몇 배 증가해 출판사가 급히 증쇄를 결정했다. 일본에서 재고가 동났고 프랑스에서는 판매량이 네 배나 늘었다. 코로나19의 영향이 가장 크지만 올해 카뮈 타계 60주년을 맞아 재조명되는 측면도 있다. 이 책을 번역한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는 “적에게 증오를 배워서는 안 되고 우리가 함께 견디고 싸워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고 했다. 소설처럼 우리도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으며 코로나19를 이겨냈으면 좋겠다.

/오현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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