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가 큰 위안이 될 때가 있다. 신자들은 모든 것을 신의 뜻으로 여기면서 역경을 이겨내기도 한다. 하지만 종교는 종종 신자의 건강은 물론 다른 사람의 건강에 나쁜 영향을 더 많이 미친다.”
미국의 저명한 비평가이자 가정의학과 전문의 해리엇 홀은 과학 계간지 ‘스켑틱’ 한국판 최신호에 실린 ‘종교는 어떻게 공중보건을 위협하는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종교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최초 2014년 스켑틱 미국판에 처음 실린 이 글은 ‘코로나 19와 질병X의 시대’ 한국판 특집호에 인용됐다. 코로나에 집단 감염된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사태를 겪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글은 ‘과학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란 부제처럼 종교가 과학을 거부하며 비롯된 다양한 피해 사례들을 언급하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은 수혈을 거부하며 신의 뜻을 거역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한다. 미국에서는 아이들의 생명이 걸린 상황에서 여호와의 증인 신자가 수혈을 거부해 법원이 개입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 다른 미국의 종교단체 ‘크리스천 사이언스’의 신자들은 질병과 죽음이 그릇된 신념에 의한 착각이고 물질세계가 모두 환상일 뿐이라며 기도를 통해 그런 잘못된 믿음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 때문에 그동안 수 많은 크리스천 사이언스 신자들이 치료 가능한 질병으로 사망했고, 이로 인해 50명 이상의 신자가 살인 및 과실치사로 기소됐다.
미국 오리건주에 기반을 둔 오순절 교파의 하나인 ‘그리스도 추종자’ 신자들은 오직 신앙 치료에만 의지하고 모든 형태의 의학 치료를 거부한다. 이 집단이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이 집단 내 소아 사망률이 높기 때문인데, 일반적인 인구 집단에 비해 26배나 더 높다. 2011년 오리건주에서는 위독한 신생아의 부모가 구급차를 부르는 대신 아이에게 올리브유를 바르고 기도를 올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교리에 따라 이를 방조했고, 부부는 살인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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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맹신으로 인한 피해는 의료체계가 낙후된 후진국일수록 더욱 심각하다. ‘이슬람교’는 남성 의사가 여성 환자를 진료할 경우 촉진 없이 진단을 내리거나 남편을 통해 간접적으로 치료해야 한다. 때문에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평균 수명은 세계에서 가장 낮다. 나이지리아의 이슬람교인들은 백신이 에이즈와 불임을 유발한다고 주장하며 소아마비 예방접종 캠페인을 반대했다. 그 결과 나이지리아에서는 소아마비 발생률이 3배 증가했으며, 소아마비가 이미 퇴치된 다른 나라들까지 전염시키는 사태를 초래했다.
그간 보고된 연구에 따르면 종교는 낮은 사망률, 더 적은 수술 합병증, 높은 행복감과 상관관계가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서 종교는 정신 건강을 해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동시에 종교는 죄책감과 상관관계를 보이며, 강박 장애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한다. 또한 정신병적 망상은 종교적인 양상을 띠는 경우가 많다고 글은 주장하고 있다.
홀 박사는 “종교는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때로는 신자의 건강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며 과학을 거부한 종교적 맹신을 경계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사람들은 어떤 종교든 믿을 권리가 있다. 나는 그러한 권리를 전적으로 지지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믿음을 강요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어떤 신념이 무고한 이들에게 해를 끼치고 사망에 이르게 하거나 혹은 공중 보건을 위험에 빠뜨린다면 나는 그런 신념을 거부한다.”
/최성욱기자 secre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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