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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문특파원의 차이나페이지] <49> 중국몽에 갇힌 '숫자'...성과 압박에 부풀리기·축소 조작 만연

■중국은 왜 ‘통계조작' 국가가 됐나

習 경제정상화 독려하자 지방정부 전력사용량 속여

코로나19 확진자 없다지만 과도한 봉쇄 지속 '모순'

정부 정보독점에 대한 견제장치 없어 통계불신 키워

글로벌시장까지 교란...1분기 역성장 인정할지 관심

지난 16일 마오성융 중국 국가통계국 대변인이 브리핑을 통해 1~2월 산업생산이 전년동기 대비 13.5% 하락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마오 대변인은 “영향은 단기적이고 통제 가능한 수준”이라고 자신했다. /EPA연합뉴스




리커창 중국 국무원 총리가 지난해 3월5일 ‘제13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제2차 회의’ 개막식에서 발표한 ‘2019년 정부 업무보고’를 보면 특이한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리 총리는 전년도인 2018년의 경제성장을 언급하며 “국내총생산(GDP)이 6.6% 신장해 규모가 90조위안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이어 “경제성장 속도가 전력사용·화물운송량 등 실물지표와 대등했다”고 덧붙였다. 베이징 소식통은 이에 대해 ‘리커창지수’를 언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리 총리는 2007년 당시 랴오닝성 당서기로 있을 때 “중국 경제통계를 전혀 믿지 않는다”면서 “믿는 것은 전력 소비량, 철도화물 운송량, 은행 융자액 세 가지 수치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서방국가들은 이를 리커창지수로 부르며 중국 경제를 추정하는 지표로 삼고 있다. 그랬던 리 총리가 이제 중국 GDP 통계가 리커창지수와 동일하다면서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다.

리커창지수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과정에서 재부각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최근 타이저우시 등 저장성 3개 도시 공장들의 전력사용량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보고됐다. 인력부족으로 공장 자체를 가동할 수 없는 기업들은 에어컨 등 전자제품을 사용하기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정부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빠른 경제 정상화를 독려하면서 지방정부가 마치 생산활동을 한 것처럼 지표를 조작했는데 이때 리커창지수의 하나인 전력사용량이 동원된 것이다.



중국의 통계조작 논란은 이미 악명이 높다. 크게 GDP를 포함해 생활 속 미세먼지 수치까지 무엇 하나 믿을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실물경제의 충격이 커지면서 정부와 기업들에 대한 압박이 심해지고 그에 따라 통계조작 가능성도 더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경제력 세계 2위 국가의 신뢰상실은 결국 글로벌 경제 교란으로 나아갈 수 있다. 초기 중국의 코로나19 상황 축소조작에 따른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나 중국 경기침체에 따른 세계 경제의 동반하락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중국에서 통계조작이 이뤄지는 가장 큰 이유는 독재체제 아래서 진행되는 성과에 대한 압박이다. 중국 정부의 최대 관심사가 경제성장이고 이를 담당하는 관료들의 임면을 전적으로 상부가 결정하는 상황에서 통계를 조작하더라도 실적을 올리는 것이 우선하기 때문이다. 견제장치가 없는 것도 문제다. 정부가 정보를 독점하고 시민단체의 활동이나 언론자유가 없는 등 통계의 정확도 확인 시스템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검찰이나 법원 등 사법권 독립도 다른 나라 이야기다. 중앙정부는 대개 지방정부의 일탈로 간주하지만 현 중국 체제 자체가 문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통계조작으로 인한 최근의 피해사례는 코로나19 대응과정에서 나왔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 보건당국은 지난해 12월31일 우한에서 ‘원인불명의 폐렴’ 환자가 27명 발생했다고 공개했다. ‘원인불명’이라는 불안이 있었지만 이것이 나중에 세계를 흔들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어 올해 1월20일 중국 정부가 밝힌 전국 환자는 217명에 그쳤다.

하지만 바로 그날 시진핑 국가주석은 “단호하게 억제하라”는 첫 지시를 내렸다. 14억명의 인구를 가진 중국에서 200여명의 환자 발생이 ‘심각’ 단계라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결국 이 같은 지시는 통계가 축소됐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그러는 동안 해외 연구기관에서는 이미 수만명이 감염됐을 것이라는 추정치를 잇따라 내보내고 있었다. 중국은 1월23일 도시 간 이동을 막는 ‘우한봉쇄’에 나섰고 이후 사실상 봉쇄를 전국으로 확대했다.

중국 정부가 돌변한 데 대해 해외에서는 추측성 보도가 잇따랐다. 이러한 불신은 지금까지 남아 있다. 조시 로긴 워싱턴 포스트(WP) 칼럼니스트는 11일 칼럼에서 “중국은 수백만 인구를 억지로 집에 가두고 약자들을 노예 취급하며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을 없애버리는 방법을 선택했다”고 비판했다.

가장 결정적인 상황은 2월12일에 발생했다. 확진자가 하루에 1만5,000여명 발생했다고 공개됐다. ‘임상진단병례’라는 항목으로 검사기준을 확대한 것이 원인이라고 하는데 일부에서는 발원지 우한이 속한 후베이성의 실수 덮기라는 말이 나왔다. 당시 지역책임자였던 후베이성 당서기 장차오량이 경질되고 시 주석의 측근인 잉융 상하이시장이 2월13일 새로 임명됐는데 그가 취임하기 전에 정리 차원에서 기존에 숨겨진 확진자를 들춰냈다는 해석이다. 이런 작전은 성공을 거둬 잉융 후베이성 당서기 임명 이후 후베이성 확진자가 급감하기 시작했고 이는 중국 전체의 확산 위축으로 이어졌다.



중국 국가보건위생위원회는 3월16일 하루 동안의 통계로 해외에서 역유입된 환자를 제외하고 후베이성을 포함한 중국 전역에서 자생한 확진자가 1명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14억 인구를 가진 중국에서 사실상 근절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제적인 시선은 녹록지 않다. 무증상 감염자가 통계에서 빠졌다는 지적이 있고 확진자가 없다면서도 여전히 봉쇄 수준인 중국의 과도한 사회생활 통제가 모순된다는 비판도 있다. 비슈누 바라단 싱가포르 미즈호은행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어두운 방에서 검은 고양이를 찾는 격”이라며 “신뢰할 수 없는 통계로 만들어진 지표들은 쓸모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후베이성 우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베이징연합의과대학병원 관계자들이 영상으로 출연해 코로나19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중국은 각 분야 전문가를 동원해 중국이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있다는 인식을 대내외에 심는 데 애쓰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코로나19 사태에 앞서 중국에서 경제통계 조작 논란은 이미 일상화된 이야기다. 지난해 홍콩 중문대와 미국 시카고대 연구진은 2008~2016년 중국의 GDP 성장률이 연평균 2%포인트 과대평가됐다는 분석을 발표한 적이 있다. 중국 경제가 이미 세계 경제의 방향을 좌우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이는 다른 나라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다.

GDP 조작은 이미 중국 정부도 일부 인정했다. 2017년 1월 랴오닝성은 앞서 2011~2014년 재정통계를 조작해 GDP를 20%가량 늘렸다고 밝혔다. 2018년에는 네이멍구자치구가 2016년 재정수입이 크게 부풀려졌다며 수정된 수치를 내놓았다. 보통 개별 관료의 범죄적 일탈로 취급되는데 흥미로운 점은 ‘고해성사’ 시기다.

랴오닝성의 경우 통계조작이 진행된 것은 왕민 전 당서기 시절이었는데 그는 후임자의 고백이 나오기 전 해에 부패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무기징역을 받았다. 왕 전 서기는 장쩌민 전 국가주석의 처조카로 시진핑 측근집단인 ‘시자쥔(習家軍)’이 아니다. 물론 통계조작이나 분식회계나 적자를 무한정 끌고 갈 수는 없다. 다만 대부분의 경우 전임자와 후임자의 사이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고백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결국 여전히 숨어 있는 부실이 얼마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조작에 대한 우려가 큰 또 다른 분야는 시 주석조차 ‘회색코뿔소’로 부른 중국의 국가부채다. 세계 주요 금융사 단체인 국제금융협회(IIF)는 지난해 3·4분기 기준으로 중국 국가부채가 GDP의 310%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반면 중국 사회과학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지난해 말 국가부채가 245%에 그친다고 추산했다. 65%포인트 차이가 나는데 이는 65조위안(약 1경1,500조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지난 16일 특수 마스크로 무장한 베이징 시민이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코로나19 종식 선언 기대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의 두려움은 여전하다. /로이터연합뉴스


부정적 인식에 시달리던 중국은 지난해 ‘국가통계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통계를 허위로 집계하고 이를 보고할 경우 해당 기관과 함께 상급기관을 처벌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법률은 누가 통계의 허위 여부를 단속할지가 애매하다”며 “효과가 별로 없을 듯하다”고 전했다.

이런 중국의 공식 통계를 어떻게 사용할지는 각국 연구자들에게 심각한 딜레마가 된다. 산업생산이 전년동기 대비 13.5% 감소하는 등 중국의 1~2월 경제지표가 급락하는 상황에서 올해 1·4분기 성장률은 1976년 문화대혁명 이후 첫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최근 맥쿼리그룹은 1·4분기 GDP가 6%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팅루 노무라증권 중국 담당 이코노미스트는 “관심은 (역성장 여부가 아니라) 얼마나 하락하는지에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른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을 구호로 올해 샤오캉(小康)사회 실현을 목표로 한 중국이 순순히 ‘역성장’ 결과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도 있다. 중국 공산당에 경제성장은 단순한 통계수치가 아니라 사회통제의 핵심수단이기 때문이다. 베이징의 한 경제 소식통은 “중국 정부가 정보를 독점하는 상황에서 중국 측 발표 통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중국에 대한 연구자들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게 된다”고 전했다.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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