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현지시간) 독일 동부 작센주 라이프치히공항에는 이탈리아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 6명이 도착했다. 이탈리아의 의료체계가 무너져 라이프치히대병원 등에서 치료를 받기로 한 것이다. 독일 내에서 확진자 수가 가장 많은 주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도 전날부터 인근 프랑스 지역의 중환자를 받고 있다. 아르민 라셰트 주 총리는 “우리는 유럽의 (연대) 정신을 유지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코로나19의 전 세계적인 확산으로 각국에서 의료마비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독일이 이탈리아와 프랑스에 의료원조의 손길을 내밀었다. 확진자 급증으로 부족해진 병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럽이 연대에 나서는 모습이다. 하지만 의료 인프라가 더욱 열악한 아시아에서 잇따라 내려진 봉쇄조치로 의약품 공급에 차질이 빚어져 앞으로는 전 세계에서 의약품 대란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탈리아의 코로나19 확진자 및 사망자가 각각 7만명, 7,000명에 육박하면서 독일 외에 다른 나라도 지원에 동참하고 있다. 러시아는 에볼라·탄저균 등을 다룬 경험이 있는 의료전문가와 이동식진료소 등을 보냈다. 쿠바도 이탈리아 북부지역에 의료진 50여명을 파견했다.
의료진 및 병상 부족으로 몸살을 앓는 곳은 이탈리아만이 아니다. 영국에선 의약품 배달, 환자 이동 보조 등을 담당할 25만명의 자원봉사자를 모집했으며 대형 전시회장으로 쓰이는 동런던 엑셀센터를 임시병원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찰스(71) 왕세자가 확진 판정을 받는 등 영국 내 코로나19 확산세는 가파른 상황이다. 스페인도 은퇴 의사·간호사 1만4,000명과 의대·간호대생 등 총 5만2,000명의 추가 인력 소집령을 내렸다. 스페인의 코로나19 누적 사망자는 25일 기준 전날 대비 443명 증가한 3,434명으로 이탈리아에 이어 중국을 넘어섰다.
문제는 각국이 병상이나 의료진 문제에 더해 의약품 부족에도 시달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각국에서 뒤늦게 봉쇄령을 내리며 마스크·의료장갑 등 글로벌 의약품 공급체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 세계 의료장갑의 70% 이상을 생산하는 말레이시아에서는 정부의 가동중단 명령으로 미국·유럽에 대한 장갑 공급이 차질을 빚게 됐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국내 수요를 먼저 맞춰야 한다며 수출에 제동을 걸었다. 이 밖에 태국과 베트남·인도네시아·터키·중국 등도 코로나19 확산으로 의료장갑 생산 공장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또 여전히 품귀 현상을 빚고 있는 마스크가 한꺼번에 사라지는 소동이 발생하기도 했다. 최근 케냐의 한 공항에서는 독일 당국이 해외에서 사들인 마스크 600만개가 자취를 감췄다.
인도의 전국 봉쇄령으로 미국에도 불똥이 튀었다. 이날 자정부터 3주 동안 유지되는 전국 봉쇄령을 앞두고 인도 전역의 약국에서 사재기가 벌어져 미국 등 해외 의약품 수출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전 세계 의약품 공급망은 인도가 중국산 핵심원료로 최종 제품을 만드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CNBC는 인도 애널리스트의 분석을 인용해 인도 제약사들이 미국의 모든 일반의약품 가운데 40~50%를 공급한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정부는 중국 내 의약품 공장을 자국으로 철수시켜 공급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인도 정부가 중국에서도 도입하지 않은 전국 봉쇄령까지 내렸지만 열악한 의료환경으로 코로나19 확산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인도의 병상 수는 1,000명당 0.5개로 한국(12개)에 비해 크게 부족하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미국 공중보건 전문가인 라마난 랙스미나라얀은 인도 인구의 20%인 3억명가량이 코로나19에 감염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기혁기자 coldmet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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