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빨리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를 해제하겠단 의지를 밝혔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발 후퇴한 것은 그만큼 미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미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가 14만 명을 넘어선 가운데 자택 대피령을 통해 주민들의 이동을 제한한 지역이 27개 주에 달한다. 여기에 코로나19 확산 속도가 급격히 가팔라지고 있는 뉴욕을 중심으로 보건 의료 시스템이 포화상태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다.
29일(현지시간) 월드오미터 집계에 따르면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14만1,854명에 달하며 사망자는 2,475명을 기록했다. 이중 피해가 가장 심각한 뉴욕주는 확진자가 5만9,648명으로, 미국 전체 확진자의 40% 이상을 차지한다. 뉴욕주의 코로나19 사망자는 965명으로, 전날 대비 237명 늘었다. 뉴욕주 하루 기준으로는 최대 사망 규모다.
뉴욕시의 상황은 특히 심각하다. 이날까지 뉴욕시의 확진자는 3만3,474명으로 뉴욕주 전체의 절반을 웃돈다. 사망자도 776명에 달한다. 뉴욕시는 병상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센트럴파크에 68개 병상 규모의 임시 야전 병원을 짓는 등 병상 확보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문제는 기존의 의료시스템으로는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지는 감염 속도를 감당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뉴욕 브룩데일 메디컬 센터는 이날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함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산소통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고 CNN에 밝혔다. 병원 측은 비상용 산소통의 절반을 포함해 코로나19 환자 치료에 대부분의 산소를 소모했다고 설명했다.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도 CNN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의료물품은 일주일 분량”이라며 “최소 수백 개의 산소호흡기가 당장 필요하다”고 말했다.
뉴욕주를 포함해 코로나19 환자가 집중된 지역에선 의료진들이 마스크 부족을 호소하기도 했다. 바이러스 감염 환자들이 밀려들면서 마스크를 더 자주 갈아써야 하는데 그만큼 수급이 빠르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뭔가가 진행되고 있다”며 “누군가는 이를 조사해야 한다”고 의구심을 드러냈다.
자택 대피령을 선포하는 지역도 꾸준히 늘고 있다. 30일 기준으로 자택 대피 행정명령을 내린 지역은 모두 27개에 달한다. 이에 따라 전체 미국인 3명 중 2명꼴인 2억2,500만명이 사실상 자택에 머물러야 한다고 CNN은 전했다.
유명인사들의 코로나19 감염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미국 월가의 주요 투자은행(IB)인 제프리스그룹의 페그 브로드벤트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이날 코로나19에 따른 합병증으로 사망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세계 최대 금융중심지인 뉴욕 월가에서 고위직 중 코로나19 사망 사례가 발생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지난 26일 병원에 입원한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존 프린도 현재 매우 위중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코로나19의 무서운 확산세에 트럼프 대통령은 내달 12일인 부활절에 경제활동을 정상화하겠다는 무리한 계획을 뒤집을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전쟁에서 이기기도 전에 승리를 선언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없을 것”이라며 “이는 모든 것 중에 가장 큰 손실이 될 것”이라고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뉴욕시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수감자 650명을 석방하는 파격 조치까지 취했다. /전희윤기자 heeyoun@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