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성착취물을 만들어 텔레그램에 유포한 ‘n번방’ ‘박사방’ 사건과 관련해 범죄 의심자의 신상정보를 퍼뜨리는 자경단에 대해서도 수사를 진행한다. 디지털 성범죄자를 밝혀내 단죄한다는 본래 취지와 달리 피해자의 사진·개인정보 유출 등 2차 피해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 본지 4월1일자 28면 참조
경찰청 디지털성범죄 특별수사본부는 2일 기자 브리핑에서 “현재 자경단 활동이 경찰 수사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피해자 사진들이 다시 유출되면서 2차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된다”고 전했다.
현재 텔레그램에는 ‘주홍글씨’라는 방이 개설돼 있으며 이곳에는 n번방 관련 혐의자로 지목된 200여명의 범죄 정황과 신상정보들이 공개돼 있다. 주홍글씨는 스스로를 자경단으로 칭하며 텔레그램 내 성착취에 가담한 가해자들을 알리고 경찰이 검거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주장해왔다. 실제로 주홍글씨는 디지털 성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해 단죄한다는 점에서 잠시나마 여론의 공감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가해자들의 범죄 행위를 밝히는 과정에서 성착취 피해 여성의 실명·사진 등을 그대로 노출하거나 가해자의 가족 혹은 여자친구·지인의 신상정보도 여과 없이 공개해 현재는 되레 2차 가해의 주범으로 꼽히고 있다. 또 이미 지난해부터 주홍글씨 방에 각종 성착취물이 활발하게 올라왔었다는 증거와 증언이 나와 수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경찰 측은 “신상공개 과정에서 기존 피해 영상이 다시 올라오는 경우도 있어 그들의 협조를 받기보다는 그들을 수사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지난달 구속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4) 관련 수사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안전과는 이날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며 개인정보를 불법 조회하고 조씨에게 유출한 혐의를 받는 최모(26)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경찰에 따르면 최씨는 서울의 한 자치구 주민센터에서 주민등록등·초본 발급 보조 업무를 하면서 200여명의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조회하고 이 중 17명의 정보를 조씨에게 제공한 혐의를 받는다.
조씨와 함께 박사방을 공동 운영한 3명 중 2명도 경찰에 검거됐다. 경찰 관계자는 “조주빈과 공범으로 알려진 3명 가운데 2명은 검거해 휴대폰 포렌식 자료를 분석 중”이라며 “남은 1명은 검거된 사람 중에 있는지 신원을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 전날 조씨의 변호인은 ‘부따’ ‘사마귀’ ‘이기야’라는 닉네임을 가진 3명이 조씨와 ‘박사방’을 공동 운영했다고 밝혔다. 이 밖에 부산경찰청은 박사방에서 유통된 것으로 추정되는 성착취 동영상을 텔레그램을 통해 되판 20대 남성 A씨를 검거해 최근 구속했다.
한편 경찰은 전날까지 텔레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대화방 운영자 등 총 140명을 검거해 이 중 23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가해자 중에는 10대가 다수 포함됐다. 연령별로는 20대 78명, 30대 30명, 10대 25명 등이다. 피해자 중에서도 10대가 상당수다. 경찰이 지금까지 파악한 피해자는 총 103명으로 이 중 10대가 26명, 20대가 17명, 30대가 8명 등으로 파악됐다.
/한동훈기자 hoon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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