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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 "택배·식당 알바하며 키운 꿈...평생 레이싱 포기 안할거예요"

■'자수성가' 카레이서 이정우

비디오 레이싱게임 시작으로 자동차에 관심

실제 레이싱 기회주는 日게임 대회 참가위해

고3 때 일어공부 8개월만에 JLPT 1급 취득

日무대 거쳐 국내 최상위 클래스 드라이버로

곱상한 외모로 '아이돌 레이서' 별명도 얻어

"고된 과정이었지만 다시 하라면 기꺼이 할것"





휴대폰 게임을 내려받는 애플리케이션마켓에서 ‘레이싱’을 검색하면 1억 이상 다운로드 수를 기록한 게임만도 10개가 훨씬 넘는다. 자동차 레이싱게임은 비디오게임 시절부터 모바일 게임이 대세인 지금까지 최고 인기 장르 중 하나다. 하지만 게임으로 시작해 실제 카레이서의 길을 걷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모터스포츠 팬들이 신예 드라이버 이정우(25)를 주목하는 이유다.

자동차 게임 고수로 출발해 프로 드라이버의 꿈을 이룬 이정우를 최근 경기 용인의 레이싱팀 캠프에서 만났다. 그는 국내 최대 규모 자동차경주인 CJ대한통운 슈퍼레이스 챔피언십의 최상위 클래스에 지난해 데뷔한 2년 차다. 박력 넘치는 레이스 스타일과 곱상한 외모 등 ‘상품성’을 갖춘 그는 지난해 데뷔하자마자 팬층을 거느리게 된 슈퍼레이스의 차세대 흥행카드다. 요즘 슈퍼레이스 관중석에서는 콘서트장이나 야구장에서나 볼 수 있던 ‘하트’가 그려진 응원 손팻말이 흔히 보인다. 이정우의 등장과 함께 생겨난 새로운 광경이다.

“‘기회가 된다면’이 아니라 기회는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이정우에게서는 스스로 꿈을 이뤄낸 젊은이 특유의 패기가 느껴졌다. 그는 “레이싱을 평생 직업으로 삼고 싶다”면서 “드라이버의 세계에서 특히 어려운 게 오랫동안 살아남는 것이지만 하루의 할 일, 1주일의 할 일, 한 달의 할 일을 해나가다 보면 롱런의 꿈에 다가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돌아보면 프로 드라이버 타이틀을 얻기까지도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온 삶이었다. 평소 차를 좋아하고 카트 경주로 레이싱에 관심을 키워가던 이정우를 전문 카레이서의 길로 안내한 것은 플레이스테이션용 비디오게임인 ‘그란투리스모’다. 이 게임만 잘하면 실제 카레이서가 될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이 일본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때부터 일본어 공부에 ‘올인’했다. 일본어를 정복해놓으면 모터스포츠 선진국인 일본을 경험할 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도 있었다.



이정우는 “고3 ‘야자(야간 자율학습)’ 때도 일본어만 팠다. 하루 4시간씩 일본어 교재를 붙들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공부해 8개월 만에 일본어능력시험(JLPT) 1급을 따냈다. 일본어 특기생으로 계명대 일본학과에 입학했고 2학년이 되던 지난 2015년에 교환학생으로 일본땅을 밟았다. 아오야마가쿠인대 경영경제학과에 적을 두기는 했지만 공부보다는 그란투리스모 대회인 GT아카데미 준비에 집중했다. JLPT 1급을 딸 때보다 훨씬 더 독하게 자신을 몰아붙였다. 5~6시간씩 게임 패드를 놓지 않은 날도 많았다. 이정우는 “최종 예선 직전에는 게임 하다가 헛구역질이 나올 지경까지 갔다”고 했다.

6만명이 출전한 GT아카데미에서 이정우는 첫 참가자인데도 당당히 1위로 최종 6인에 선발돼 ‘모터스포츠 성지’인 영국 실버스톤서킷에 초청받았다. 거기서 2주간 레이싱 교육 프로그램을 거친 뒤 최종 선발전에서 2등을 했다. 이 과정은 일본 최대 공영방송인 NHK의 아침 뉴스에 비중 있게 소개되기도 했다. 당시 1등을 한 일본인 친구는 지금 평범한 회사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2등에 머물러 더 이상 주최 측의 지원을 받지 못했던 이정우는 한국 모터스포츠계의 떠오르는 별이 됐다.

팬들 사이에서 ‘아이돌 레이서’로 불리는 이정우는 업계에서 ‘자수성가 드라이버’로 통한다. 유학생 신분으로 1년, 워킹 홀리데이로 1년 등 3년 넘게 일본에서 혼자 살면서 택배·퀵서비스·편의점 아르바이트부터 식당과 노래방 서빙, 이삿짐센터 일까지 안 해본 일이 별로 없다. 한국과 사업상 교류가 많던 레이싱 마니아와 인연이 닿아 2016년 아마추어 레이싱팀에 들어갔지만 연간 6~7개 대회에 나가려면 차량 정비와 소모품 비용 등에 최소 3,000만원은 들기 때문이었다. 이정우는 “주중에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주말에 차를 탔다. 집세 내고 차를 타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었다”며 “사고로 차를 부수는 날에는 앞이 캄캄하기만 했다”고 돌아봤다. 하지만 그 시절의 생활을 다시 하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으냐는 물음에 이정우는 망설임이 없었다. “고된 시간이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한 과정이었잖아요. 그때로 돌아가 다시 하라면 기꺼이 할 것 같아요.”





슈퍼레이스는 “카레이서의 길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던 무렵 비친 한줄기 빛이었다. “일본에서 선배 드라이버들에게 들은 조언 중 하나는 ‘3년 해보고 답이 안 나오면 그만두는 것도 방법’이라는 것이었어요. 아니나다를까 3년째인 2018년에 경제적 부담이 극에 달했는데 마침 슈퍼레이스 투어링카(장거리 운전용 고성능차) 레이스인 GT클래스팀에서 연락이 왔죠.”

GT클래스 참가는 CJ로지스틱스팀의 러브콜로 이어졌고 테스트를 통과해 지난해 슈퍼레이스 최상위 클래스인 슈퍼6000 클래스에 데뷔했다. 올 시즌은 엑스타 레이싱으로 팀을 옮겨 부지런히 새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래퍼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진행자로도 유명한 김진표 감독이 이정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슈퍼6000 클래스 데뷔 첫해부터 이정우는 화제를 몰고 다녔다. 7라운드 때였다. 이정우는 내로라하는 선배들을 차례로 제치고 독주를 펼쳤다. 우승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세 바퀴를 남기고 차가 서버렸다. 액셀러레이터를 밟아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과는 리타이어(경기 포기). 이정우는 “그때 그대로 우승했더라면 거만해졌을 것 같다. 우승을 아깝게 놓친 바람에 레이스 내외적으로 배운 게 엄청나게 많았다”고 했다. 바로 다음 라운드에서 이정우는 당당히 3위를 차지해 처음으로 포디움(시상대)에 올랐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도 주말 내내 신 나게 차를 몰던 프로 지망생 시절의 열정이 몸에 밴 때문일까. 이정우는 주 무대를 한국으로 옮긴 후에도 2016년부터 참가해온 일본 슈퍼다이큐 대회에 꾸준히 출전하고 있다. 슈퍼다이큐는 일본의 대표적인 내구레이스 대회다. 흥행영화 ‘포드 v 페라리’를 통해 일반에도 잘 알려진 르망 24시간 레이스와 경기 방식이 비슷하다. 팀당 최대 6명이 24시간 동안 이어서 운전하는 방식인데 프로와 아마추어 구분 없이 모든 클래스의 차량이 동시에 달리기도 해 변수가 많다. 제법 안정된 수입이 보장된 국내 무대에 속해 있으면서도 비시즌이면 수고스러운 도전에 나서는 것은 “그저 행복해서”다. 그는 “주변을 보면 정말 고생 끝에 레이싱 드라이버가 된 선배님들이 많은데 그에 비하면 저는 굉장히 운이 좋은 편”이라며 “언젠가 드라이버로서 생명이 끝나도 이쪽 업계를 떠나지는 못할 것 같다”고 강한 열정을 드러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슈퍼레이스 개막이 미뤄지면서 요즘 이정우는 다시 게임 모니터 앞에 앉았다. ‘i레이싱’이라는 유명 모터스포츠 게임으로 시뮬레이션 훈련에 몰입하고 있다. 목과 코어 근육 중심의 드라이버 맞춤 운동을 넘어 하루 2시간 넘게 웨이트트레이닝에 푹 빠지면서 몸도 근육질에 가까워졌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준비가 돼 있습니다.” 이정우가 환하게 웃는다.
/용인=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He is… △1995년 대구 △2015년 닛산 GT아카데미 일본지역 우승·아시아 결선 2위 △2016년 후지 챔피언십 MX5 클래스 3라운드·슈퍼다이큐 후지 9시간 내구레이스 ST1 클래스 4라운드 우승 △2017년 슈퍼 FJ 후지 스피드웨이시리즈 개막전 3위, 슈퍼 FJ 스즈카 전일본 파이널 참가 △2018년 슈퍼다이큐 후지 24시간 내구레이스 ST1 클래스 우승, TCR 서포트 레이스 KOGE 클래스 1라운드 우승·2라운드 2위 △2019년 슈퍼레이스 ASA6000 클래스 8라운드 3위·시즌 14위, 슈퍼다이큐 TCR 클래스 5라운드 2위·6라운드 3위 △2020년 계명대 일본학 학사, 동대학원 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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