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장갑이 손에 맞지 않는데 어떻게 끼라는 겁니까?”
지난 11일 오후 2시경 서울 성북구의 한 사전투표소에서 작은 소동이 일었다. 한 남성이 비닐장갑이 손에 맞지 않는다며 현장 근무자에게 항의한 것이다. 현장 근무자가 방역 정책을 지켜야 한다며 장갑을 껴달라고 부탁했지만 남성은 기어코 장갑을 끼지 않았다. 결국 그 남성은 장갑을 끼지 않은 채로 기표소로 들어가 투표를 마쳤다. 그 남성이 기표소에 들어가 투표를 마치고 나가는 과정까지 제지하는 현장 근무자는 없었다.
4·15 총선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새로운 확산 기점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진행된 사전투표 투표소 곳곳에 ‘방역 구멍’이 생겨난 것으로 드러났다. 수많은 사람이 한 장소에 모이는 특성상 코로나19 확산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계속해 나오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정부의 방역 대책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앞서 방역당국은 4·15 총선과 사전투표를 앞두고 투표소 현장에서 1m 거리두기, 입장 전 발열 체크, 손 소독 후 위생장갑 착용하고 입장 등의 방역 대책을 마련했다. 체온이 섭씨 37.5도 이상이거나 호흡기 증상이 있는 경우에는 별도 장소에 마련된 임시 기표소에서 투표하게 한다는 방침까지 세웠다.
하지만 지난 10일과 11일 일선 사전투표소에서는 충분한 방역 관리가 이뤄지지 않았다. 건물 밖에서는 1m 거리두기가 잘 지켜지는 편이었지만 건물 내부, 특히 계단에서는 지켜지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10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 투표소에서는 시민들이 계단에서 빽빽하게 줄을 서 대기했다. 11일 서울 성북구 보문동 투표소도 2층 기표소로 올라가는 계단에 시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거리를 두며 대기하라고 안내하는 현장 근무자는 없었다. 10일 사전투표를 하러 부산의 한 주민센터를 찾은 A씨는 “열 측정과 손소독까지 하고 입장해도 결국 내부에서 충분한 거리가 확보되지 않아 불안했다”고 밝혔다.
이에 방역 전문가들은 보다 철저한 방역 관리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장갑을 끼지 않으면 그 사람이 스쳐지나간 모든 곳에 바이러스가 묻을 우려가 있다”며 “선거관리위원회와 방역 당국이 보다 철저하게 현장 관리를 해야 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 교수는 “4·15 총선에서는 입구에 고깔을 세우는 등 거리두기를 유지하게 하고 철저하게 현장 통제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심기문기자 do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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