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가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내수와 수출이 모두 어려워 올해는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내수에서는 면세점·호텔·여행사 등의 타격이 불가피하다. 수출도 마찬가지다. 유럽·미국 봉쇄가 2·4분기까지 완전히 풀리지 않아 자동차·전자제품 수출이 차질을 빚을 것이다. 신흥시장에서는 국가 디폴트(채무불이행)가 우려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대공황 이후 최악의 세계 경기 침체라면서 내년 하반기 이후 회복하는 ‘U자형’을 전망했다. 이를 감안하면 수출은 내년 상반기까지 어려울 수 있다.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가 나와야 경제가 풀리는 건가.
△백신은 개발돼도 임상시험에 1년은 걸린다고 한다. 미국에서 3월 가장 빨리 개발돼 시범접종을 했지만 성공하더라도 연내에 사용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치료제는 길리어드사이언스사(社)의 렘데시비르가 가장 유력하지만 부작용 등으로 장담할 수 없고 항체치료제 개발 등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일단은 대규모 진단검사를 신속히 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 경제는 코로나19 사태 전부터 이미 많이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코로나19 사태 전에 이미 중장기 저성장 기조 또는 일본형 장기불황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코로나19로 불황이 더욱 가속화할 것이 우려된다. 수출에서는 미중 무역분쟁과 보호무역주의, 중국발 주력 제조업 경쟁 격화, 중국의 감속 성장 등으로 어려움이 가중됐었다. 저출산·고령화로 내수의 구조적 침체가 본격화한 가운데 기업 환경 악화로 기업들이 해외로 탈출하는 상황이었다. 경쟁력이 허약해져 경제구조 전환이 필요한 시점에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사태까지 일어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이동 관련 업종의 타격이 심한 듯하다.
△항공·호텔·면세·여행 등 이동 관련 업종의 타격이 극심하다. 하반기에 조금 나아질 것 같지만 완전 회복에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코로나19가 종식되거나 백신이 보급돼야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해외여행에 나설 텐데, 올해는 어렵고 내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정부가 대기업이라는 이유로 항공 등의 기간산업 지원을 주저하고 있는데.
△미국이나 유럽도 타격받은 항공사에 대해서는 대기업 여부를 가리지 않고 살리고 있다. 우리도 일단 회사를 살리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 자구책을 조건으로 여신을 연장해주고 각종 지원도 해줄 수 있다. 다만 자구 노력을 요구하더라도 부실기업에 적용하는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 유휴자산 매각, 임직원 임금 삭감, 배당 축소·중지 등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경영을 잘못했다기보다는 코로나19로 생긴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이스타항공을 인수하기로 했던 회사들이 인수를 포기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대우건설을 무리하게 인수하면서 상처를 입었다. 인수합병(M&A)에서 ‘승자의 저주’를 받은 것이다. 당시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려던 한화그룹은 금융위기가 오자 인수계약금 절반을 날리고 포기했다. 이번 위기가 HDC현대산업개발의 주력 분야인 건설·부동산개발·레저산업에도 부정적인 여파를 미칠 가능성이 크다.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HDC현산에 승자의 저주가 될 가능성이 높아 고민이 깊을 것이다. 아시아나항공의 시가총액은 이미 HDC현산이 인수하기로 한 가격의 3분의1 밑으로 하락했다. 이스타항공 인수를 추진하는 제주항공의 고민도 비슷할 것이다.
-IMF 외환위기 사태 때처럼 정부가 산업 구조조정을 주도하는 게 바람직한가.
△이번 위기가 심각하므로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정치적인 측면과 고용시장의 충격 때문에 구조조정을 추진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구조조정이 어려운 좀비기업들이 많다. 경쟁력이 소진된 기업들이 사라지지 않으면 결국에는 떠오르는 새로운 기업과 신산업의 발목을 잡게 된다. 위기상황에서는 고통분담과 공감대 형성이 상대적으로 쉬울 수 있다. 정부가 당근을 주고 다른 기업과 합병시킬 경우 경제와 고용에 주는 충격을 완화할 수도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더 늘어나게 될 부실기업을 처리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정부가 부실해지는 모든 기업을 지원해야 하는가.
△모두 지원할 경우 재정 건전성이 굉장히 나빠질 것이다. 정부는 지원 대상 기업이 5~10년 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기준으로 옥석을 가려야 한다. 산업의 현재 경쟁력과 미래도 봐야 한다. 이번 사태로 일시적 경영난에 빠진 기업과 그전부터 회생이 어려웠던 좀비기업을 구분해야 한다. 혈세가 투입되는 만큼 어떠한 정치적 고려들이 영향을 미쳐서도 안 된다.
-코로나19 사태 전과 후를 비교하면 많은 게 달라질 것 같다.
△말로만 듣던 디지털 대전환에 가속도가 붙고 4차 산업혁명의 흐름도 빨라질 것이다. 디지털 대전환은 세 가지 관점에서 진행될 것이다. 우선 언택트(untact·비대면) 소비가 가속화할 것이다. 오프라인 유통의 매출은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두번째로는 기업들이 온라인을 활용한 비즈니스 모델을 본격 도입할 것이다. 세번째는 재택근무·화상회의가 늘면서 업무 프로세스에 변화가 올 것이다. 집에서 근무해도 생산성이 떨어지지 않으면 정규직 근로자를 많이 쓰거나 오피스빌딩을 보유할 필요성이 떨어진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는 것도 활발해질 것이다.
-기업 경영의 글로벌화에 역풍이 불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는데.
△글로벌 공급망은 앞으로도 계속 존속하겠지만 이를 보완하려는 노력들이 있을 것이다. 중국·베트남 등의 공장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주요 시장별로 공급망을 분산 배치할 것이다. 부품 조달도 한 나라, 한 기업에서 최소한 2개 이상의 국가와 기업으로 다변화할 것이다. 해외로 나간 공장이 본국으로 돌아오는 리쇼어링(reshoring)도 확산될 것이다. 로봇과 자동화 기술 발전으로 ‘스마트 팩토리’ 구현이 가능해져 낮은 인건비라는 매력은 줄고 고객 근처에서 맞춤형 주문생산을 하는 비즈니스 모델의 이점이 커지기 때문이다.
-글로벌 공급망의 변화가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기본적으로 전 세계 무역이 위축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만큼 우리에게는 악재다. 중국에 부품·소재·장비를 팔아 중국이 조립해 전 세계에 수출하는 모델의 비중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대륙 간 무역위축으로 해운·조선산업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우리도 미국·일본처럼 강력한 제조업 유턴 정책을 펼쳐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중국과 베트남 공장 비중을 줄이고 미국 등 주요 시장에 제조거점 설치를 늘릴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시급히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근본적인 경제구조 개혁이 필요하다. 기업이 한국을 떠나게 만들었던 규제부터 과감히 풀어야 한다. 규제가 센 유럽에서 온 기업들조차 한국의 규제가 심해 힘들다고 하소연할 정도다. 신산업을 옥죄는 규제도 과감히 풀어야 한다. 제조업 경쟁력 회복을 위해 김대중 정부 시절에 단행했던 것과 같은 노사정 대타협 추진도 필요하다. 사측은 고용을 유지·창출하겠다고 약속하고 노측은 고통을 분담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업을 해외로 내몰거나 비정규직을 늘리도록 만드는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완화해야 한다.
-우리 기업들에 대한 중국 기업들의 추격이 매우 거세지고 있다.
△메모리반도체를 제외하고는 한국이 확실히 앞서 있다고 하는 산업이 없다. 중국은 규모의 경제가 있고 우리보다 인건비도 싸다. 중국이 우리를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다. 다만 중국의 브랜드는 우리보다 약하다. 결국 연구개발(R&D) 투자를 강화해 차별적인 제품을 만들어내고 브랜드 마케팅 역량을 강화해 차별화하는 노력이 국가적으로 필요하다. 위기의식을 갖고 지식기반 산업 고도화에 나서야 한다. /오현환기자 hhoh@sedaily.com
He is…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컬럼비아대·연세대 교수를 거쳐 서울대 경영대 석학교수로 임명됐다. 한국전략경영학회 회장, 한국경영학회 부회장 등을 지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석학종신회원이며 전미(全美)경영학회 국제경영분과 차기 회장에 선출됐다. 그가 쓴 ‘스마트경영’ ‘퍼펙트 체인지’ ‘삼성 웨이’ 등은 경영 분야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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