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구 84석(전체 253석). 4·15총선 참패라는 성적표를 받아든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송구하다”며 16일 결국 고개를 숙였다. ‘선거의 왕’ ‘킹 메이커’라는 수식어는 지난 1987년 민주화 이후 치러진 총선에서 가장 큰 패배를 기록하면서 무색해졌다. 당내에서는 “공천과 쇄신, 선거공학 총체적으로 실패했다”며 안철수 국민의당과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등 중도보수개혁세력을 모두 아우르는 변화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특별기자회견에서 “통합당의 변화가 모자랐다는 것은 인정한다. 자세도 갖추지 못한 정당을 지지해달라고 요청한 것을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지역구 84석이라는 충격적인 결과에 대해 “아쉽지만 꼭 필요한 만큼이라도 표를 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정부 여당을 견제할 작은 힘이나마 남겨주셨다”고 평가했다.
김 위원장은 “야당도 변화하라는 명령으로 받아들이겠다. 이번 총선에서 드러난 국민의 마음을 잘 새겨서 야당도 변화하지 않을 수 없어졌다”면서 “아무리 부족하고 미워도 나라의 앞날을 위해 야당을 살려주셔야 한다.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전날 황교안 대표는 선거 패배에 대해 “모두 대표인 제 불찰이고 불민”이라며 사퇴했다. 총괄선대위원장으로 함께 선거를 치른 김 위원장은 “선거하는 데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임무라고 생각하고 선거가 끝나면 일상의 생활로 돌아간다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거론되는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직은 맡지 않겠다는 의미다.
김 위원장은 회견 후 기자들이 ‘부족한 변화’가 무엇인지 묻자 “탄핵 이후 자유한국당이 거쳐오는 과정에서 변해야 할 시대 상황에 대한 인식이 잘못돼 노력한 흔적을 별로 보이지 않고 계속 ‘보수, 보수’만 외치다가 지금까지 온 것 아닌가”라며 “아무 변화를 안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천 과정’ 문제가 패인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그건 내가 논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이 다 잘 아는 것이니까…”라고 했다. 황 대표의 막판 공천 뒤집기,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공천 번복 등 잇따른 파동을 언급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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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내 대표 소장파 중진인 김용태 의원과 김세연 의원 모두 “당이 민심을 잃지 못하고 거대한 오판을 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 “당 지도부에만 책임을 미루지 않겠다”며 일선에서 후퇴해 바닥에서 다시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총선에서 직접 험지 구로구을에 나가 선전한 김용태 의원은 “(민심은) 문재인 정부가 못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들은 대안이 아니다. 딱 그거”라고 말했다. 이어 “(국민들은) 이 어려운 경제를 살리겠다는 대안을 갖고 있느냐, 우리의 삶, 현재와 미래를 맡길 정책을 갖고 있느냐를 물었다”면서 “그러나 실력은 물론 그럴 품격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국민들의 판단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번 총선에서 공천관리위원으로 당 지도부와 각을 세운 김세연 의원도 “결과를 보면서 참담한 심정과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며 “(공관위원인) 저도 낙관적인 시각을 견지하면서 엄중한 상황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당 내부에서도 지도부의 오판과 무능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총선에서 수도권과 중도층의 마음을 돌렸다고 평가받는 차명진 전 의원을 공천한 지도부에 대한 비판이 크다. 한 당직자는 “공천 당시부터 막말 전력으로 말이 많았고 공천을 하고도 지적이 있었다”며 “총선이 4월 16일 세월호 기일 전날인데 그 유가족에 대한 막말을 계속 내뱉는 자를 공천하고도 문제가 없을 줄 알았느냐”고 꼬집었다. 이어 “민주화운동에 대한 훼손도 이제 그만해야 한다”며 “국민들이 민주화운동의 성과를 누리고 있는데 왜 과거 얘기를 자꾸 꺼내와서 지금 싸우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선거공학적으로도 패배했다고 설명했다. 당권 유지에 혈안이 된 나머지 전체 의석수를 뺏기는 공천을 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와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 윤상현 의원, 권성동 의원이다. 한 영남권 의원은 “홍 전 대표를 양산에 보냈으면 양산에서 1석, 대구는 대구대로 1석이었다”며 “이는 권 의원, 윤 의원도 마찬가지로 총 6석을 잃었다”고 평가했다. 또 “이언주 의원도 전략 공천을 했으면 상처를 주지 말아야지 밉다고 우리끼리 온갖 음해를 하고 총선을 앞두고 말이나 되는 행동이었나”라고 비판했다. /구경우·김혜린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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