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중단됐던 경제활동을 재개하려는 움직임이 분주한 가운데 여전히 시기상조라며 경계하는 목소리가 높다. 연일 경제활동 재개 의지를 불사르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일관성을 잃고 갈팡질팡하는 사이 코로나19 환자가 88만명을 넘어서며 트럼프 행정부의 부실한 위기대응 능력이 사태를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23일(현지시간) 국제 통계 사이트 월드오미터 집계에 따르면 전날 미국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3만2,000여명이며 누적 확진자는 88만6,709명으로 늘었다. 사망자는 이날 2,300여명 증가해 총 5만236명이 됐다. 지난 18일 이후 하루 신규 확진자가 2만명대를 유지했지만 22일부터 이틀 연속 확진자가 3만명을 넘어서며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내 코로나19 감염자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을 수 있다는 추정도 나왔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23일 약 3,000명의 주민을 대상으로 코로나19 항체검사를 실시한 결과 13.9%가 양성을 보였다고 밝혔다. 뉴욕주 전체 주민으로 단순 환산하면 270만명에 해당하며 공식 집계치의 10배에 달한다. 이는 증상이 없거나 가벼운 수준이라 통계에 잡히지 않은 감염사례가 그만큼 많을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속도가 줄어들었다고 판단한 미국 내 각 지역은 경제 재가동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나서고 있다. 캘리포니아·조지아·콜로라도 등 일부 주에서 경제 재개를 허용할 방침인 가운데 수도 워싱턴DC에서는 ‘DC재가동자문단’을 발족해 경제 정상화의 청사진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워싱턴포스트(WP)가 23일 보도했다. 이들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봉쇄조치를 해제할지 결정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워싱턴대 의과대 보건계량분석평가연구소(IHME)는 코로나19 예측모델을 통해 오는 5월1일 이전에는 어떤 주도 경제활동을 재개해서는 안 된다고 평가했다. 이 예측모델은 미국 50개주 가운데 약 절반이 5월25일까지 봉쇄조치를 유지해야 하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해서는 안 된다고 권고하고 있다.
당장 24일부터 미용실과 체육관·마사지숍 등의 영업을 재개하기로 한 조지아주는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하루빨리 경제를 재가동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지만 돌연 조지아주의 경제재개에 대해 “너무 이르다”며 반대를 표명했다. 뉴욕타임스(NYT)와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의 반대는 경제재개와 관련해 혼란스러운 메시지를 던졌다”고 지적했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태스크포스(TF) 인사들의 설득을 받아들여 조지아주의 경제 정상화가 시기상조라고 우려하는 대외 메시지를 발신함으로써 잇달아 반복된 의료·보건 당국자와의 불협화음을 피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강행을 적극적으로 막지는 않아 조기 경제 정상화의 효과는 거두면서 여론의 부담 및 책임론에서 벗어나려는 노림수였다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회적 거리두기’의 연장 가능성도 시사했다. 그는 23일 코로나19 TF 브리핑에서 ‘연방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이 초여름까지 연장돼야 하느냐’는 질문에 “아마도 그럴 것이고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고 답했다. 3월16일 발표된 사회적 거리두기는 이달 30일까지로 한 차례 연장된 상태다.
한편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미흡한 대처를 두고 ‘미국 예외주의’에 대한 믿음도 흔들리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독보적인 역할을 하며 ‘특별한’ 지위를 인정받았지만 코로나19 사태에서는 리더십이 실종됐다는 것이다. 하버드 국제개발센터의 리카르도 하우스만 책임자는 “미국에는 국제적인 리더십은 물론 국가적 차원의 리더십도 없다”고 지적했다. AP통신이 시카고대 여론연구센터(NORC)와 함께 16~20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3%만이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브리핑 정보를 ‘상당히 신뢰한다’고 답해 국민들의 신뢰도 또한 매우 낮은 수준임을 드러냈다.
/전희윤기자 heeyou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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