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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정치] 文정부 "北 특이동향 없다", 도대체 왜 안 믿나

北침묵에도 韓정부가 "이상 없다" 적극 해명

'뇌사설' '위중설' 등 혼란 전혀 사라지지 않아

문정인까지 나서 "김정은 살아있다" 주장했지만

여야 막론 "건강한지 어떻게 아나" 장관들 질타

'나홀로' 남북교류 추진 속 "북한 눈치" 의심도

'金 건강' 묻는데 '북한군 동향' 답변만 3주째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지난 4월29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정보로 종합평가를 했는데 특이동향이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면서 계속된 의혹 제기가 답답한 듯 “이 자리에서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 정부의 입장을 확고하게 믿어달라”며 “누구보다도 국방부 장관인 내가 제일 엄중하게 인식하고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날 정 장관의 반응은 김정은 신변을 둘러싼 정부 고위직들의 생각과 국민적 불신이 어떻게 충돌하고 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김정은이 지난달 12일부터 장기 잠행에 돌입한 이후 우리 정부의 입장은 청와대부터 통일부, 외교부, 국방부, 국가정보원 가릴 것 없이 늘 “북한 내부에 특이 동향은 없다”였다. 하지만 이후에도 혼란은 끊이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불신이 총선 이후 강력하게 다시 시동 걸린 남북교류사업과 그동안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우리 정부가 보인 조심스러운 태도와도 무관치 않은 것으로 진단했다. 북한은 침묵하는데 “이상이 없다”며 한국 정부가 확신하듯 더 적극 해명하는 모습도 신뢰 확보에 역효과를 불러일으켰다는 분석이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 /연합뉴스


문정인 “김정은 건강하다” 주장도 약발 안 먹혀

문재인 정부는 애초부터 김정은의 ‘신변 이상설’을 부인하는 입장을 흔들림 없이 유지했다. 처음에는 이 같은 입장을 우회적으로 내비치다가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혼란스러워지자 지난달 23일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통해 “북한 내부에 특이 동향이 없음을 ‘확인’했다”고 못 박아 발표했다. 통일부, 국정원 등도 입장은 똑같았다.

그래도 의혹이 끊이지 않자 이번에는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이 갑자기 나섰다. 문 특보는 26일 미국 폭스뉴스 기사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은은 살아 있고 건강하다(alive and well)”고 단언했다. 그는 “우리 정부의 입장은 확고하다(Our government position is firm)”는 표현까지 쓰며 억측 확산을 경계했다. 이어 “김정은은 4월13일부터 원산 지역에 머물고 있다”며 청와대 발표보다 한 발 더 나아간 정보까지 전했다.

문 특보 인터뷰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외신들은 중국공산당이 베이징의 인민해방군총의원(301병원)에서 의료전문가팀 50여명을 북한에 파견했다고 알렸고 ‘뇌사설’ ’위중설’ ‘호전설’ ‘도피설’ ‘코로나설’ 등 온갖 추정이 국내외 곳곳에서 난무했다.

외교관 출신 탈북민인 태영호 미래통합당 당선인은 27일 미국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김정은의 신변은 특이 동향이 없는 게 아니라 대단히 이례적”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김정은이 스스로 일어서거나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이라며 김 위원장이 15일 태양절(김일성 주석 생일) 행사에 참석하지 않은 것을 두고 “북한 사람들의 눈에는 아주 이상하게 보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정은 전용 추정 열차의 원산역 정차설과 관련해서는 ‘기만 전술’ 가능성을 제시했다.

또 다른 탈북민 출신 총선 당선자인 지성호 미래통합당 당선인도 “김정은의 생명이 위독한 건 사실”이라며 사망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심지어 29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후계 가능성을 매우 높게 보는 보고서를 냈다.

정부 측 구원 투수로 나선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28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김정은 사망설은 악의적 보도”라며 “정찰위성이 김정은 위원장이 승마를 하는 모습을 포착했다는 정황도 가능한 얘기”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태 당선인은 고위직도 아니었고 김정은을 만난 적도 없을 것”이라고 평가 절하하며 “김정은 위원장이 사회적 거리두기 차원에서 쾌적한 원산 별장으로 갔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 /연합뉴스


여당조차 “정부 정보 능력 못믿어 ”

김정은 신변에 대한 정부 입장을 둘러싼 국민적 불신은 국회 외통위·국방위 전체회의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야당 의원들뿐만 아니라 여당 의원들까지 가세해 장관들에게 질타를 쏟아낸 것이다.

지난달 28일 국회 외통위 전체회의에서 이석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김연철 통일부 장관에게 “김정은의 건강 이상설에서 ‘특이 동향이 없다’는 것은 원산에 있는 건 맞지만 거기서 무엇을 하는지 파악이 안 됐다는 것이냐, 원산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지만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냐”라고 물었다. 이 의원은 또 “문 특보가 ‘살아있고 건강하다’고 했는데 생존해 있는 건 그렇다 해도 건강한지는 우리가 어떻게 아느냐”며 “우리 정부가 모르고 있고 국정원도 파악이 안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꼬집었다. 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때도 우리 국정원은 전혀 모르다가 이틀 뒤 북한 TV에서 애도하는 것을 보고 알았다”며 “우리 정부의 정보 수집 능력에 회의를 갖는다”고 타박했다.



정병국 미래통합당 의원은 김정은의 거취를 묻는 질문에 김 장관이 “김 위원장의 동선은 정보사항”이라고 답하자 “대한민국 정부가 김정은의 보안도 지켜줘야 하는 의무가 있느냐”며 “그게 무슨 정보 사항이냐”고 항의했다.

유민봉 통합당 의원은 “김 장관은 북한 매체를 인용하고 중국 대변인의 말을 그냥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했고, 박병석 민주당 의원은 “김일성 생일날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지 않은 것은 통상적이지 않다고 볼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김 장관은 이에 대해 “특이 동향이 없다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을 정도의 정보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김정은이 심혈관 시술 후 원산에 칩거 요양 중’이라는 보도를 두고 “북한 사정을 아는 사람들이 봤을 땐 가짜뉴스라고 판단된다”고 반박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이날 국회에서 “현재 북한 내부에 특이 동향은 없는 것으로 관찰된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연합뉴스


‘북한 눈치 보는 것 아니냐’ 시각도 여전

일각에서는 김정은의 신변에 대해 국민적 의문이 여전한 것은 현 정부의 대북관과도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 제재 완화 등 남북관계 개선을 국정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삼는 만큼 아는 정보가 있어도 북한을 자극할 것을 우려해 솔직하게 공개하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침묵하는데 오히려 한국 정부만 확신에 찬 듯 근거 제시도 없이 “이상이 없다”고 적극 반박하는 태도도 심리적 반발을 부추겼다는 평가다.

실제로 지난 24일 통일부가 공개한 ‘제2차 북한인권증진기본계획(2020년~2022년)’은 ‘북한 인권 개선의 성과 창출을 위해 대화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한 보다 실효적인 방법을 강구한다’는 문구를 넣어 논란을 일으켰다. 북한 인권 증진 사업도 북한 수뇌부의 눈치를 보고 추진하겠다는 의미처럼 해석된다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 4·15 총선 직후 다른 모든 정책보다 남북교류사업 추진에 우선 박차를 가하는 상황도 이 같은 시각에 힘을 실었다. 지난해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1년 이상 소강 상태를 맞았던 남북관계는 최근 동해북부선 건설 사업 추진 등 한국만의 독자 사업으로 강한 드라이브가 걸린 상태다. 적어도 올 11월 대선까지 미국 정부의 도움도 거의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업 파트너인 김정은의 부재가 부각되는 것은 자칫 남북교류사업 추진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


‘김정은 건강’ 묻는데 ‘북한 軍동향 동문서답’ 지적도

더욱이 문재인 정부는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납은 단계 연방제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하겠다’고 합의한 6·15남북공동선언의 올 20주년 행사를 되도록 북한과 함께 실시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올해 안에는 무조건 성사시킨다는 각오로 공을 쏟고 있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방한 추진 역시 결국 남북관계를 위한 포석이다.

문정인 특보는 이와 관련해 총선 직후인 지난 20일 열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 관련 전문가 특별대담에서 “정부하고 민간이 협력하면 평양종합병원 하나 정도는 얼마든지 우리가 도와줄 수 있다”며 “종합병원 (지원) 같은 건 남측에서도 반대할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김정은 위원장이 한국에 답방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극복하고 총선을 성공시킨 소프트파워로 미국의 대통령과 국민들을 설득하면 상당히 먹혀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아울러 대다수 사람들은 ‘김정은의 건강 상태’를 궁금해 하는데 줄곧 ‘북한 군 동향’으로 동문서답하는 태도도 답답함을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이는 지난달 30일 대만의 정보기관인 국가안전국(NSB)의 추궈정 국장이 대만 국회에 보고한 내용과 청와대 및 우리 장관들이 대응한 내용을 비교하면 명확하게 대조된다. 추 국장은 “김정은이 병에 걸린 게 맞다”며 “(군 부대에) 특별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김정은의 건강 정보는 빼고 뒷부분의 군 동향 정보만 3주째 제공하고 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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