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된 지 30년이 지났는데도 해제하지 않은 임수경 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의 1989년도 밀입북 관련 기밀문서 공개 여부가 결국 법원의 판단을 받게 됐다. 외교부가 관련 문건들을 처음부터 기밀로 유지한 데다 법조인 단체 등의 정보공개 청구까지 거부한 결과다. 임 전 의원의 밀입북 사건은 1989년 최대 국민적 관심사였던 데다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도 연관이 깊은 사건인 만큼 법적 판단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임종석이 기획한 ‘통일의 꽃’, 나라를 발칵 뒤집다
이른바 ‘임수경 밀입북 사건’은 한국외대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임 전 의원이 1989년 6월30일부터 8월15일까지 평양에서 열렸던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로 참석한 사건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임 전 의원은 서울에서 일본 도쿄까지 관광 목적으로 출국해 독일 서베를린·동베를린, 러시아 모스크바 등을 거쳐 평양으로 들어갔다. 이는 당시 전대협 3기 의장이었던 임종석 전 실장 등이 기획·주도했다.
임 전 의원은 당돌한 옷차림과 행동으로 북한 사회에 큰 충격을 준 것으로 지금까지 회자된다. 이 때문에 북한에서는 한 동안 그를 ‘통일의 꽃’으로 부르기도 했다.
당시 임 전 의원은 국제사회를 상대로 각종 외교 활동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임 전 의원이 누구의 도움을 받아 어떤 루트로 북한에 갔는지, 지나간 곳마다 어떤 행적을 남겼는지는 당대부터 국민적 관심사였다.
임 전 의원은 그해 8월15일 판문점을 통해 귀국한 직후 체포됐다. 임 전 실장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돼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임 전 실장은 3년6개월 간 실형을 살고 가석방됐다.
임수경 전 의원은 이후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로 출마해 국회에 입성했다. 임종석 전 실장은 2000년 새천년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서울 성동을에서 당선되며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임수경 밀입북 문서’만 빠진 외교부 기밀 해제
당초 이들과 관련한 외교 문서들은 올해 바로 국민들에게 공개될 것으로 예상됐다. 외교부는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마련된 ‘연례 외교문서공개제도’에 따라 1994년부터 매년 30년이 지난 기밀문서를 공개하고 있다.
문제는 외교부가 지난 3월31일 관련 외교 문건들을 기밀로 유지하면서 불거졌다. 외교부는 1989년도 문서를 중심으로 총 1,577권(24만여 쪽)의 외교문서를 기밀에서 해제하고 국민에게 공개했는데 ‘임수경 밀입북 기밀문서’는 한 건도 포함하지 않았다.
외교부 당국자는 당시 “문서가 존재하는지도 모르겠고 거의 없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추후 밝혀진 바로는 임 전 의원과 관련된 외교문서는 160쪽가량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외교부의 해명과 달리 실제로는 적잖은 분량이 존재했던 것이다. 외교부는 현재도 “외교문서공개심의회가 적법하게 판단했다”는 입장만 고수할 뿐 비공개를 결정한 구체적인 사유는 밝히지 않고 있다.
한변, 법원에 ‘정보공개 거부 취소’ 행정소송 제기
보수 성향의 변호사단체인 ‘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은 이에 반발해 지난 4월1일 ‘외교부는 임수경 방북과 관련된 모든 기밀문서를 공개하라’는 성명을 내고 곧바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당시 한변은 “언론 보도 등 이미 다양한 형태로 알려진 사실이 담긴 외교문서조차 국민에게 공개하지 않았다”며 “외교부 당국자가 비공개 이유로 든 이유는 정보공개법 제9조가 규정하는 ‘정보비공개’의 타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외교부는 4월14일 이를 최종 거부하고 비공개 결정을 유지하겠다는 내용의 통지서를 한변에 보냈다. ‘임수경 밀입북 기밀문서’ 비공개 결정 과정엔 법적인 하자가 없었다는 이유였다.
한변 대표자 김태훈 회장은 이에 불복해 열흘 뒤인 4월24일 임 전 의원 방북 관련 기밀문서와 관련해 정보공개 거부 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피고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다.
이 사건은 서울행정법원 3부(박성규 부장판사)에 배당됐다. 강 장관에게는 소송안내서와 답변서 요약표 등이 지난 29일 송달됐다. 첫 재판 일정은 아직 잡히지 않은 상태다. 외교부가 구체적으로 어떤 판단 때문에 해당 문서들을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는지는 결국 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나게 됐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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