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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문특파원의 차이나페이지] <52> 무역전쟁엔 장시성·코로나엔 산시성 부각...배타적 국가주의 우려

■중국의 ‘대장정 추억’ 활용법

작년 5월 대장정출발기념비 헌화하며 대미항전 결의다진 習

올 4월엔 건국 기틀 마련 시안 찾아 고난극복 '옌안정신' 강조

관영매체들 이례적 속보형식 보도...중국내 동요 차단엔 성공

과거 모델서 돌파구 찾는 공산당 방식에 해외·젊은층선 반감

지난 4월21일 중국 산시성 안캉시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한 시진핑 국가주석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개학한 학생들에게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산시성은 과거 공산당 홍군이 대장정 끝에 새 근거지를 마련한 곳이다. /신화연합뉴스




미중 무역전쟁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까지 잇따른 위기에 봉착한 중국이 과거 기사회생의 상징인 ‘대장정(大長征)’의 추억을 소환하고 있다. 추억 소환의 선두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서 있다. 그는 지난 4월 산시성 시안을 방문한 자리에서 고난극복의 ‘옌안(연안)정신’을 외쳤다. 옌안은 시안 북쪽에 위치한 도시로 과거 공산당이 이끈 홍군이 1년여의 대장정 끝에 1935년 10월 도착해 이후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의 기틀을 마련한 곳이다. 시 주석은 시안에서 코로나19의 여파로 인한 엄혹한 경제·사회적 위기 국면에서도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과시했다. 홍군은 공산당이 지휘하는 ‘당군’으로 1948년에 이름을 지금의 ‘인민해방군’으로 바꿨다.

‘대장정 추억’ 소환은 이미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시 주석은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이던 지난해 5월 장시성을 시찰하면서 미국에 맞서겠다는 전의를 다진 바 있다. 장시성은 앞서 1934년 10월 홍군이 대장정을 시작한 곳이다. 주목할 만한 일은 중국 관영매체의 보도행태다. 보통 3~4일씩 진행되는 시 주석의 지방시찰에 대해 관영매체들은 시찰이 끝난 후 종합해서 한꺼번에 발표하곤 했다. 즉 시 주석이 며칠간 관영매체에 보이지 않을 경우 지방시찰 가능성이 크다는 해석도 있다. 그런데 이런 관영매체들이 4월 산시성 시찰과 지난해 5월 장시성 시찰을 매일 속보 형식으로 보도했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시 주석의 대장정 관련 시찰의 의미를 중국 내외에서 즉각 이해하기를 바랐던 모양인데 일단 성공한 듯하다”고 말했다.

중국의 1·4분기 경제성장률이 전년동기 대비 -6.8%(전 분기 대비로는 -9.8%)를 기록하는 등 1976년 문화대혁명 이후 첫 역성장을 기록했지만 중국 내에서의 동요는 적다. 현지 중국인들은 일단 코로나19 극복이 우선이고 경제는 어떻게든 좋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다만 지나친 ‘정신승리’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중국의 배타적 국가주의, 애국주의 강화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이른바 대장정은 공산당 홍군이 당시 중화민국 정부군(국민혁명군)에 밀려 근거지를 장시성 루이진에서 산시성 옌안으로 옮긴 사건이다. 홍군은 장시성에서 구이저우성·쓰촨성 등을 거쳐 산시성까지 약 1만5,000㎞를 행군했다. 당초 10만명이었던 부대원이 1년여 후 옌안에 도착했을 때는 6,000여명만 남았다고 한다. 다만 대장정을 겪은 공산당 지도부가 이후 중일전쟁과 국공내전에서 승리하면서 현대 중국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마오쩌둥이 확고한 지도자로 부상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에 중국 공산당은 대장정 자체를 신성하게 본다.

반면 해외의 시선은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정부군에 쫓긴 반군의 탈출 정도로 격하하는 시각도 있다. 대장정을 서구에 처음 알린 사람은 아이러니하게 미국인 저널리스트인 에드가 스노였다. 그는 대장정 직후인 1936년 옌안을 방문해 마오 등과 인터뷰한 내용을 ‘중국의 붉은별’이라는 책으로 묶어냈다.

어쨌든 공산당은 대장정을 통해 생존했을 뿐 아니라 중국 전역에 자신들의 대의를 선전할 기회를 얻었다. 다만 당시 중앙정부인 중화민국도 나름대로 소득이 없지는 않았다. 군벌이 지배하던 변방을 공산군의 추격을 핑계로 장악하는 효과를 얻은 것이다. 대장정으로부터 겨우 2년 후 벌어진 중일전쟁에서 중화민국이 서부 변방인 충칭까지 수도를 이전할 수 있었던 것은 앞선 홍군과의 전투로 지역 군벌을 일소했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 정부가 대장정을 본격 활용한 것은 지난해 5월이었다. 미중 무역전쟁 격화로 중국이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중국 지도부가 민심을 다잡는 방편으로 내놓은 것이 대장정 추억 소환이었다. 시 주석은 지난해 5월20~22일 수하들을 대동하고 장시성을 시찰했다. 대장정 출발의 85주년 되는 해였다.

시 주석은 장시성 시찰에서 대장정 당시 홍군의 집결 및 출발지인 장시성 남부 간저우시 위두현에 나타나 대장정출발기념비에 헌화하며 선전을 극대화했다. 위두현의 한 촌락을 찾아 당시 대장정에 참여한 홍군의 후손을 만나기도 했다. 시 주석은 “현재 국가가 발전하고 인민 생활이 좋아졌으나 혁명 선열과 당의 초심 그리고 사명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시 주석은 육군 보병학교를 찾아 이례적으로 훈련장에서 부대 훈련상황을 참관하기도 했다. 중국 공산당은 ‘시진핑 강군사상 학습요강’ 책자를 만들어 전군에 배포했다.

특히 이때 미국의 아킬레스건인 희토류 관련 산업시설도 방문해 맞대응을 시사하며 미국에 강력한 경고를 보냈다. 미중 무역전쟁은 올해 1월 ‘1단계 무역합의’ 서명에도 불구하고 현재진행형이다. 현재 미국이 코로나19 책임론을 근거로 중국에 추가 관세 부과를 위협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미중 무역합의로 한숨은 돌렸지만 올 초에 시작된 코로나19 사태로 중국이 다시 혼돈에 빠져들었다. 그러자 중국은 대장정의 추억을 소환하며 선전에 나섰다. 이번에는 홍군의 대장정 도착지이자 이후 건국의 기틀을 마련한 곳인 산시성에서 ‘옌안정신’을 부르짖었다.



시 주석은 지난달 20~23일 산시성 시찰에서 코로나19 사태 극복 및 탈빈곤과 전면적 샤오캉(小康) 사회 실현을 요구했다. 앞서 장시성 방문이 ‘대미 항전’의 의미가 짙다면 이번에는 내치 다지기 성격이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최악의 1·4분기 성적표를 받아든 직후였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시안 인근 친링산맥 뉴베이량 자연보호구의 ‘불법 별장촌 사건’을 예로 들며 부정부패 해소와 무조건적인 지시 이행을 요구했다. 또 안캉시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에 개학한 학생들에게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코로나19 조기 종식의 성공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이외에도 시안 산시자동차와 시안교통대·다탕(大唐)거리 등을 시찰하며 ‘신 인프라’ 투자 확대, 기업의 생산 재개, 야간경제 활성화를 통한 소비수준 회복 등을 주문했다.

시 주석은 특히 옌안정신을 언급하며 “감염병과의 투쟁에서 각급 당 조직은 강력한 전투력을 보여줬고 많은 당원과 간부들이 모범적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일부 당 조직의 지도력 부재, 간부의 능력 부족 등 문제도 드러났다”며 공산당원들에게 책임을 철저히 수행하라고 다그쳤다.

일부에서는 중국이 코로나19의 여파로 연기했던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오는 21일 개최하기로 확정 발표한 데 대해 홍군의 전설적인 승리인 대도하 전투 성공을 계기로 삼았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홍군은 1935년 5월 국민군에게 포위된 상황에서도 쓰촨성 내의 장강 지류인 대도하를 무사히 건너 이후 이를 승리의 발판으로 삼았다. 이 대도하 전투일이 5월25일이다. 전통적으로 2주간 열리던 양회는 올해는 닷새 내외로 대폭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양회를 25일께 폐막하면서 다시 한번 대장정의 추억을 소환할 수 있는 셈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지난해 5월 20일 장시성 간저우시에 있는 ‘대장정출발기념비’에 헌화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다만 이러한 과거 성공모델에서 미래 재난의 돌파구를 찾는 공산당의 방식이 현대화된 세계는 물론 중국 젊은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낼지는 미지수다. 대장정이 공산당 승리의 역사이기는 하지만 중국사 전체에서 긍정적인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현재 중국 정부는 올해로 91주년을 맞은 5·4운동은 소중히 챙기면서도 31주년인 6·4톈안먼사태는 지우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식 국가주의 또는 애국주의가 중국 내에서는 통하겠지만 세계무대에서는 반감과 당혹감을 불러일으킨다”고 전했다.

한편 중국의 대장정이 유명해지면서 원래 뜻과 달라진 측면이 있다. 보통 한국과 중국에서 ‘먼 길을 간다’고 할 때는 한자로 ‘長程(중국어 발음은 창청)’이라고 쓴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대장정의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長征(중국어 발음은 창정)’으로 바꿨다. 이렇게 되면 단순히 ‘가다’가 아니라 ‘정벌하다’가 된다. 중국의 대장정은 우리가 쓰는 ‘국토대장정’ 등과 의미가 크게 다른 셈이다.

현재 중국에서 대장정 용어는 많은 분야에서 사용되는데 일례로 우주로켓 이름도 ‘창정(長征)’이다. 이 경우 우주를 정벌한다는 호전적인 색깔이 입혀져 우주공간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세계 공통의 신념을 거스른다는 지적도 있다. 이와 관련, 중국은 5일 우주정거장 건설에 활용하기 위한 자국 최대의 운반로켓 ‘창정-5B호’의 첫 시험발사에 성공하면서 과학기술력을 과시했다. 창정-5B호는 기존 창정-5호를 개조한 것으로 한번에 22톤의 화물을 지구 저궤도로 보낼 수 있다.

/chsm@sedaily.com

중국의 ‘창정-5B호’가 5일 하이난의 원창우주기지에서 첫 시험 발사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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