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에서는 라마단 기간(올해 4월23일~5월23일)이 끝나면 르바란 연휴가 시작된다. 올해는 원래 이달 26~29일이었다. 연휴 첫날을 ‘다시 영적으로 돌아간다’는 뜻의 ‘이둘피트리(Idul Fitri)’라 칭하는데 이때 전국 사원에서 대규모 기도 집회가 열린다. 전 세계 이슬람 국가에서 라마단이 무사히 끝난 것을 감사하며 열리는 ‘이드 알 피트르(Eid al-Fitr)’가 인도네시아에서는 ‘이둘피트리’인 셈이다.
르바란 연휴에는 추석처럼 민족대이동도 일어난다. 공식 휴일은 이틀이지만 직장에 따라 4일에서 7일까지 휴가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대도시 근로자가 부모를 만나기 위해 고향으로 떠나고 조상의 묘소를 찾아 성묘하기도 하는데 이를 ‘무딕’이라고 한다. 대통령 등 고위인사들은 관저나 자택을 개방해 나눔과 베풂을 실천한다. 아이들은 새 옷을, 어른들은 전통의상을 입고 지난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빌고 상대방의 허물을 용서하는 ‘성캄’ 의식을 갖는다. 아이들에게 돈을 주는 관습도 있는데 어른들은 문 앞에서 지갑을 흔들며 아이들을 맞이한다.
여타 이슬람 국가와 다른 토속적 색채도 눈길을 끈다. 15세기에 이슬람이 인도네시아에 전파돼 토속 문화와 섞이는 과정에서 자바와 이슬람 문화가 혼합한 형태로 발전한 것이다. 주먹밥처럼 생긴 ‘크투팟(ketupat)’을 나눠 먹는데 크투팟은 ‘잘못을 인정하다’라는 뜻의 자바어 ‘쿠팟(kupat)’에서 유래했다. 쌀떡을 둘러싼 초록색 야자수 잎은 인간의 죄를 상징하고 야자수 잎을 펼치면 나오는 새하얀 쌀떡은 ‘순수함’을 뜻한다. 죄를 깨끗이 씻고 순수한 영혼으로 돌아가라는 르바란의 의식을 음식에 담은 셈이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올해 연말로 연기했던 르바란 연휴를 7월로 재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는 소식이다. 르바란 기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감염자 폭증을 우려해 이달 말로 예정됐던 르바란 연휴를 12월28∼31일로 늦췄는데 이를 다시 7월 말로 앞당긴다는 것이다. 죄를 씻고 깨끗하게 다시 태어난다는 르바란의 의미처럼 하루빨리 바이러스를 퇴치하고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은 인류 공동의 소망인 듯싶다. /정민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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