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방망이 처벌 논란을 일으킨 이른바 ‘신림동 원룸촌 강간미수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여 만에 같은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에서 샤워를 하던 20대 여성을 상습적으로 훔쳐 본 5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하지만 이번에도 처벌은 주거침입죄 적용에 그칠 것으로 보여 논란이 예상된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서울의 한 자취방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샤워하는 모습을 훔쳐보다 적발되자 달아났던 A씨를 지난 5일 검거했다고 7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달 23일 오후10시께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피해 여성이 거주하는 건물 바로 옆 건물 벽에 설치된 도시가스 배관을 타고 2층 창문 너머로 샤워 중인 여성을 훔쳐봤다. A씨는 한발은 배관을, 다른 한발은 담장을 지지한 채 범행을 저질렀다. 당시 피해 여성은 범행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한 이웃이 공동현관 폐쇄회로(CC)TV로 이를 알게 돼 “그곳에서 뭐하는 거냐”고 소리치자 놀란 A씨는 급히 도주했다. 이웃에 의해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피해 여성이 경찰에 신고했다.
A씨는 동종 전과가 있는 등 그간 상습적으로 이 같은 범행을 저질러온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A씨에게 적용될 혐의는 신림동 원룸촌 사건과 마찬가지로 단순 주거침입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박수진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상습적으로 여성의 화장실을 훔쳐봤다는 건 본인의 성적 목적을 충족하기 위한 것이지만 이 행위 자체만으로는 현행법상 처벌할 성범죄 조항이 없는 게 현실”이라며 “피해 여성의 성적 권리가 침해됐고 가해자 역시 의도를 가졌던 만큼 충분히 가벌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한 여성의 귀갓길을 뒤쫓아 집까지 침입하려다 미수에 그쳤던 이른바 ‘신림동 원룸촌’ 사건에 대해서도 항소심 재판부는 주거침입 혐의만 인정했다. 당시 재판부는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강간·강제추행의 고의가 있었다거나 강간·강제추행죄에서 말하는 폭행·협박이 있었다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앞서 A씨에 대한 구속영장도 청구됐지만 법원은 “주거지가 비교적 명확하다”며 이를 기각했다.
이번 사건처럼 상습적 성희롱이 이어지는 데는 여성들의 눈높이와 동떨어진 처벌 규정 때문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 변호사는 “현행법상 이런 류의 범죄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니 예컨대 스토킹 범죄로 이를 포괄해 처벌하자는 이야기 등이 나오는 것”이라며 “입법 공백을 메울 법률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허진기자 h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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