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에도 친박 원내대표, 비박계 집단 탈당 |
“친박은 죽지 않는다”
2016년 12월 16일 국회 본관 246호에서 열린 당시 새누리당(현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및 정책위원회의장 선출 의원 총회’에서 소속 국회의원들이 신임 원내대표로 정우택 의원을 뽑자 나온 말이다. 12월 9일 국회는 당시 ‘최순실 게이트’로 궁지에 몰린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을 가결했지만, 새누리당은 62표를 친박계 정우택 의원에게 몰아줬다. 비박계 나경원, 소장파 김세연 후보는 55표를 받아 고배를 마셨다.
정우택 의원은 당내 의원들을 향해 “제 모든 것을 바쳐서 좌파 세력이 집권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정우택 원내지도부는 보수 분열의 서막이었다.
친박계 원내대표가 선출된 지 11일 만인 12월 27일 김무성 의원과 유승민 의원을 중심으로 소속 의원 29명이 탈당했다. 한 달여 뒤인 2017년 1월 24일 개혁보수를 지향하는 바른정당이 탄생했다. 2월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꾸며 한국 보수정당은 사상 최대 규모의 분열을 한다. 3월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파면했다.
한국당은 5월 정우택 의원의 말을 지키지 못했다. 19대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41.08% 득표)가 대통령에 당선되며 정권을 내줬다.
사진=2017년 11월 29일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오른쪽)과 정우택 원내대표가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당대표 및 최고위원·3선 의원 연석회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연합뉴스
친홍준표, 친박에 ‘바퀴벌레’ 막장 계파싸움 |
보수분열과 대선 패배는 거대한 내전으로 연결됐다. 친홍과 친박의 싸움이다.
2017년 5월 대선에서 2위(24.03%)를 한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가 포문을 연다. 대선 패배 후 미국으로 떠난 홍 전 지사는 5월 17일 본인의 페이스북에 “박근혜 팔아 국회의원 하다가, 박근혜 탄핵 때는 바퀴벌레처럼 숨어있었고, 박근혜 감옥 간 뒤 기어 나와 당권이나 차지해보려고 설치기 시작하는 자들”이라고 맹비판했다. 이른바 ‘친박 바퀴벌레’ 발언이다. 친박 중진 홍문종 의원은 “낮술 드셨나.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탄핵 후 보수는 홍 전 지사를 택했다. 7월 한국당 당 대표에 오른 홍 전 대표와 친박계 정우택 원내대표는 동거하며 1년의 내전을 치른다. 홍 전 대표는 같은 해 11월 1호 당원인 박 전 대통령을 ‘해당 행위’로 제명했다. 그러자 정우택 원내대표와 김태흠 당시 최고위원은 ‘무효’를 주장하며 맞섰다.
같은 해 12월 새 원내대표는 ‘친홍’ 김성태 의원(55표)이 친박 홍문종(35표), 한선교 의원(17표)을 누르고 선출된다. 당 권력이 친홍으로 재편된 것이다. 홍 전 대표는 친박계를 향해 “틈만 있으면 비집고 올라와 당에 해악을 끼치는 연탄가스 같은 정치인”이라고 직격탄을 날린다.
홍준표 대표-김성태 원내대표의 지도부와 친박계의 전쟁은 2018년 6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까지 계속된다.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가 열리고 친박계를 중심으로 홍 전 대표를 연일 비판하자 그는 “틈만 있으면 연탄가스처럼 비집고 올라와 당을 흔드는 것을 이제는 용납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다음 총선 때는 당을 위해 헌신하도록 강북 험지로 차출하도록 추진하겠다”고 했다. ‘친박 사지’ 발언이다.
친홍과 친박의 당내 싸움은 같은 해 6월 광역지자체 17곳 가운데 경북도지사(이철우)·대구시장(권영진)만 당선되고 한국당이 대패하면서 끝난다. 홍 전 대표가 사퇴했다. 친박과의 전쟁에서 홍 전 대표는 ‘막말 정치인’ 이미지가 더 깊어졌다.
뒤끝은 아직도다. 같은 해 11월 홍 전 대표가 정치활동을 재개하자 정우택 의원은 홍 전 대표의 말을 인용해 “바퀴벌레처럼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연탄가스처럼 왜 스며 나오는지 잘 모르겠다”고 일갈했다. 또 이번 총선에서 당 지도부는 홍 전 대표에게 “강북 험지로 가라”고 되갚았다. 홍 전 대표는 거부하고 고향출마를 고수하다 대구 수성을에 출마해 당선됐다.
사진=지난 2017년 12월15일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친박계 중진 김태흠 의원(뒷줄 왼쪽)이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앞줄 오른쪽)을 쳐다보고 있다./연합뉴스
황교안·나경원 투쟁 일변도·심재철은 무기력 |
관련기사
문제는 친홍과 친박의 내전 끝에 손을 내민 황 전 대표의 주변을 친박 인사들이 장악한 것이다. 당 대표에 오른 후 초대 사무총장에는 친박계 중진 한선교 의원, 전략기획부총장((제1사무부총장)은 추경호 의원을 임명했다. 비서실장도 친박계 재선으로 알려진 이헌승 의원, 당 대변인은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강성 친박계 민경욱 의원이었다. 당내에서는 “사실상 친박당으로 돌아갔다”고 평가했다.
계파가 없는 지도부에 “구심점이 없다”는 말이 나왔다. 같은 해 4월 터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사태는 느슨한 황교안 대표-나경원 원내대표 체제를 흔들었다. 공직선거법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검·경 수사권조정 등의 법안이 패스트트랙에 지정됐고 이를 막는 과정에서 국회가 마비됐다. 이후 한국당은 ‘반문재인’을 외치며 장외투쟁에 몰두한다. 7월께 터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로 장외행보는 심화하고 한국당은 삭발과 단식 투쟁으로 ‘아스팔트 보수’라는 오명까지 붙었다.
사진=2019년 3월 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나경원(왼쪽) 전 원내대표가 발언하는 황교안(오른쪽)가 전 대표를 바라보고 있다./연합뉴스
황 대표와 나 원내대표는 패스트트랙 당시 투쟁하며 검찰에 고발된 의원들에게 ‘공천 가산점’을 주는 문제로 맞서며 잡음을 냈다. 황 대표는 나 원내대표를 불신임하며 총선까지 예상됐던 나 원내대표의 임기는 2019년 12월 끝난다.
의원들은 새 원내대표에 비박계 5선 심재철 의원과 친박계 3선 김재원 의원을 새로 뽑았다. 투쟁일변도인 ‘반황교안 심리’가 작용했다는 평가와 전략가인 김 의원이 패스트트랙 법안 협상을 이끌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됐다. 하지만 연말 4+1(더불어민주당·정의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로 뭉친 범여권이 밀어붙인 예산안과 패스트트랙 법안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힘을 잃는다. 통합당 관계자는 “심재철·김재원 원내지도부도 투쟁 일변도인 당의 방향을 바꾸지 못했다”고 말했다.
보수진영은 1월 통합을 이루며 미래통합당이 만들었다. 그러나 홍 전 대표의 공천 반발, 민경욱 의원의 ‘호떡 공천’과 차명진 전 의원의 ‘막말 파동’을 겪으며 총선에서 지역구 84석으로 참패했다. 탄핵 후 4년, 4번의 선거에서 4연패 했다.
원내대표 주호영 대 권영세, 또 싸우면 몰락 |
통합당은 궁지에 몰렸다. 통합당 당선인 84명 가운데 67%에 달하는 56명이 영남권이다. 쇄신을 못하면 ‘영남 지역정당’으로 전락할 위기다.
황교안 대표는 사퇴했다. 하지만 통합당은 당 대표의 권한을 쥐고 당을 쇄신할 비상대책위원회를 누가 맡느냐를 두고 내전을 또 벌이고 있다.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에게 맡겨야 하는지를 둔 내홍이다. 한때 설화에 중심에 선 홍 전 대표와 김태흠 의원이 앞장서 김 전 선대위원장에 ‘뇌물전력자’, ‘무슨 화타냐’라고 말하며 공개 반대하고 있다.
운명은 8일 결정된다. 이날 새 국회를 이끌 초대 원내대표 경선이 치러진다. 주호영 의원(5선·대구 수성갑)과 이종배 의원(3선·충북 충주)과 권영세 당선인(4선·서울 용산)과 조해진 당선인(3선·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가 맞붙는다. 당선자들이 새 원내대표를 뽑는다. 이후 김종인 비대위를 수용할지 말지도 새 원내지도부가 당선자들의 의견을 물어 결정한다.
새 원내지도부마저 계파 갈등을 끝내고 쇄신하지 못하면 통합당의 미래는 비관적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불출마한 김세연 의원은 “짧고 강렬한 소멸을 통해서 빨리 바닥을 치고 반등을 해야 할 것인데 지금에서는 길고 지루한 소멸의 과정에 이미 접어들어서 중반 정도를 지나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통합당은 이날 총선 당선인들과 오전 10시부터 5시간 동안 끝장 토론을 진행한 후 원내대표 투표를 한다. 새 원내대표를 선출할 한 초선 당선인은 “누구를 찍을지는 결정하지 못했고 말을 들어보고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싸우면 이제 끝장난다. 대안을 제시하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다”고 말했다. /구경우기자 bluesquare@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