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호영호(號)냐, 권영세호냐. 권영세호냐, 주호영호냐. 21대 국회 제1 야당인 미래통합당의 첫 원내사령탑이 7일 오후 3시부터 시작될 투표를 통해 결정된다. 투표권은 4·15 총선에서 당선된 84명의 지역구 의원에 있다. 통합당 당선자가 어떤 원내대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당의 지향은 물론 당내 역학 구도, 대여(與) 스탠스 등이 상당히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과연 주호영호 통합당과 권영세호 통합당은 각각 어떤 모습일까. 두 후보의 출마의 변과 최근 발언, 행적 등을 통해 그려본다.
◇당의 지향=어느 후보가 원내대표가 되든 통합당의 이념적 좌표는 지금보다는 다소 ‘좌클릭’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누구도 원내대표 출마선언문에 그 좌표를 분명하게 못 박지는 않았다. 주 후보는 출마의 변을 통해 당의 이념좌표를 분명히 설정하겠다고 했고, 권 후보는 당의 가치를 새롭게 세우겠다고 했다. 하지만 두 후보의 행적과 발언을 살펴보면 당의 지향은 강경 보수보다는 온건 보수 쪽에 형성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먼저 주 후보는 한때 ‘개혁 보수’를 표방한 바른정당에 몸을 담았다. 그저 몸 담은 정도가 아니라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를 지냈다. 이념적 스펙트럼을 펼쳐놓고 보면 바른정당이 통합당보다 왼쪽에 있음은 물론이다. 그는 바른정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를 맡고 있던 지난 2017년 5월 정개개편과 관련해 “이념적인 좌표가 중도라고 여겨지는 국민의당과 여러 가지 협력할 일은 있을 거라고 예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일정 부분 중도로의 확장 가능성도 열어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권 후보 역시 2000년대 중반 남경필 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정병국 통합당 의원(‘남·원·정’)과 함께 소장파로 분류됐다. 그는 당내 개혁소장파 모임인 ‘새정치수요모임’과 ‘미래연대’의 멤버로 활동하기도 했다. 당시 추구했던 개혁의 방향이 ‘왼쪽’이었냐, ‘오른쪽’이었냐를 딱 잘라 규정할 수는 없지만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를 묻는다면 왼쪽이었다. 그때 권 후보는 수차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당의 변화와 쇄신에 앞장서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정치컨설팅그룹 ‘민’의 박성민 대표는 2006년 7월 한나라당 당권 경쟁에 뛰어든 그에 대해 “(권 후보는) 개혁파와 중도파 사이 ‘이중 멤버십’을 지니고 있다”고 평한 바 있다.
시계추를 다시 현재로 돌려 보면 주 후보는 중도 표심을 당을 수 있는 방향으로 당을 이끌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권 후보는 한발 더 나가 사실상 ‘중도 실용 정당’으로 당을 이끌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차기 원내지도부가 들어선 이후 실제 당의 지향이 어떻게 달라질지를 관측하기 위해서는 후보의 지향을 제약하는 환경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외부 환경 측면에서는 아무래도 이른바 보수의 성지인 대구에서 내리 5선을 달성한 주 후보의 지향을 제약하는 힘이 대구보다는 중도 성향이 강한 서울에서 4선 고지에 오른 권 후보 지향을 제약하는 힘보다 클 것으로 평가된다. 후보의 지향으로 보나, 외부 환경으로 보나 주호영호보다는 권영세호가 살짝 더 왼쪽으로 가게 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당내 역학=친이(친이명박)계로 분류되는 주 후보가 당선된다고 해서 아니면 친박(친박근혜)계로 분류되는 권 후보가 선출된다고 해서 친이(비박)·친박 간의 계파 갈등이 커질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두 후보 모두 계파색이 상대적으로 옅은데다 한 계파가 다른 계파를 누르고 당권을 장악할 수 있는 상황도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분류하기 좋아하는 호사가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명목상의 계파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어느 후보가 원내사령탑에 오르든 계파 구도와 달리 지역 구도는 잔존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역 구도는 이번 경선 과정에서도 분명하게 형성됐다. 대구·경북(TK)의 주 후보는 충청권의 이종배 정책위원회 의장 후보와 서울 용산의 권 후보는 부산·경남(PK)의 조해진 정책위의장 후보와 한 팀을 이뤘다. 주 후보는 당내 ‘탈영남 기류’를 극복하기 위해, 권 후보는 비(非)영남의 수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각각 러닝메이트로 충청권과 영남권의 정책위의장 후보를 택한 것 아니냐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통합당의 당선자 84명 가운데 67%인 56명이 영남권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특히 권 후보가 원내대표가 될 경우 일각에서 쇄신의 키워드로 제시하고 있는 ‘탈영남’론이 상대적으로 더 힘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권 후보는 6일 출마 기자회견을 통해 “수도권·중도층·청년세대가 우리 당에 원하는 변화를 이루겠다”고 역설했다. 반면 주 후보가 원내대표가 되면 스스로의 기반이자 당의 토대인 영남에서 당이 탈피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강하게 내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쉽게 말하면 주 후보가 이기면 영남권 당선자에, 권 후보가 이기면 비영남권 당선자에 어느 정도 힘이 실릴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두 후보 모두 당내서 불거질 수 있는 ‘지역 갈등’을 원만하게 해소해나갈 수 있는 능력은 갖추고 있다는 평가다. 주 후보는 합리적이고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로 한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 폭넓은 인맥을 갖고 있고 권 후보는 한나라당 사무총장 시절 당내의 불협화음을 누그러뜨리고 갈등은 풀어낸 경험이 있다. 뿐만 아니라 주 후보는 탈영남론을 의식해, 권 후보는 ‘영남 홀대론’을 의식해 오히려 비영남과 영남 당선자를 배려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대여 관계=새로운 원내 지도부가 선출되면 대여 스탠스는 지금보다 다소 부드러워 질 것으로 관측된다. 주 후보는 “통합당을 ‘강한 야당’으로 만들겠다”고 밝혔지만 그가 말한 강한 야당은 강경 투쟁을 일삼는 강한 야당이 아니다. 그는 4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통합당은) 압도적인 수적 열세를 극복할 수 있는 풍부하고 치밀한 대여협상 경험과 전략, 그리고 집요함이 필요하다”면서 자신은 원내수석부대표와 정책위 의장, 특임장관을 두루 경험했고, 지난해 패스트트랙 국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적임자라고 자평했다. 투쟁보다는 ‘협상’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의 의석수(180석)와 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의 의석수(103석), 소위 ‘지는’ 협상을 잘 하지 않는 협상가인 김태년 신임 민주당 원내대표 등을 감안할 때 투쟁 방식으로는 대여 협상력을 끌어올리기 쉽지 않은 현실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싣는다.
권 후보는 한 걸음 더 나가 ‘아스팔트 보수’와의 결별을 선언했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더는 아스팔트 투쟁, 강경 투쟁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권 후보는 6일 기자회견을 통해 “20대 국회에서 50여 차례나 강경 투쟁을 한 결과가 지난 총선 참패”라며 “장외 투쟁은 옳은 대여전략이 아니라 생각한다. 장외 투쟁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국회에서 투쟁을 원칙으로 하면서 협상을 통해서 더 나은 대안으로 여당을 설득하고 정책 도입과 입법 등을 관철시켜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주 후보와 권 후보는 김종인 비대대책위원회 체제, 미래한국당과의 합당, 홍준표 무소속 당선자 등의 복당 등 당의 여러 현안에 대해서는 대부분 비슷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바꿔 말하면 누가 당선되더라도 크게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이다. 두 후보는 김종인 비대위에 대해서는 찬성하고 있고 미래한국당과의 합당은 빨리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무소속 당선자의 복당에 대해서는 신중론을 견지하고 있다. 심지어 개인 의견임을 강조한 뒤 추후 당의 여론을 수렴해 결정하겠다는 입장까지도 같다. /임지훈기자 jh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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