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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수탈' 아픔 서린 군산...젊은 창업가들 '꿈의 무대' 탈바꿈

[고병기 기자의 진화하는 도시 이야기]

■'낡고 오래된' 군산서 희망 찾는 밀레니얼 세대

개항·일제강점기 산업·경제 거쳐

해방이후 3대 향토기업 전성시대

80~90년대엔 제조업 늘어났지만

최근들어 공장 폐쇄·지역경제 타격

군산·非군산 지역 창업가들 모여

미국 향토 햄버그·전통주 판매

마을호텔 프로젝트 아이디어 등

지역 자원 재활용한 사업 활기





군산은 낡고 오래된 건물이 많다. 낡은 건물들은 한편으로는 정체되어 있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는 훌륭한 자원이 되기도 한다. /사진=고병기기자


군산은 낡고 오래된 건물이 많다. 낡은 건물들은 한편으로는 정체되어 있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는 훌륭한 자원이 되기도 한다. /사진=고병기기자


영화 ‘변호인’을 촬영했던 곳. 군산은 낡고 오래된 과거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영화 촬영지로도 인기가 많은 지역이다. /사진=고병기기자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촬영했던 초원사진관 /사진=고병기기자


군산은 낡고 오래된 도시라는 느낌이 강하다. 개항 이후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 제조업의 부흥과 쇠퇴를 거치면서 그런 이미지가 굳어졌다. 군산 곳곳에 남아 있는 오래된 건축물들도 정체되고 어두운 도시 이미지에 큰 영향을 줬다. 군산이 유독 과거의 시대 배경을 다룬 영화 촬영지로 선호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변호인’ ‘8월의 크리스마스’ ‘타짜’ ‘장군의 아들’ 등을 비롯해 수많은 영화가 군산에서 촬영됐다.

아마도 군산을 찾는 이들 대부분은 오랜 역사의 나이테가 켜켜이 쌓여 있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실제 군산은 일제강점기 당시 수탈의 중심지라는 역사적 배경 덕분에 어느 도시보다 이국적이고 다양한 문화 지층이 잘 보존돼 있다. 군산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일본인들의 주거 양식인 ‘적산가옥’이다. 군산은 지난 1890년대 후반 개항 이후 1920~1930년대 일제강점기 수탈의 중심지였다.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렸던 서양의학의 선구자 고(故) 이영춘 박사가 거주했던 이영춘 가옥을 비롯해 군산 곳곳에 적산가옥이 170여채 정도 남아 일제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군산 원도심의 윤곽도 일제강점기 때 형성됐다. 영화동과 월명동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주로 거주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형성된 지역이어서 원도심임에도 불구하고 도로 폭이 넓고 길이 반듯한 것이 특징이다. 김중규 군산근대역사박물관장은 “일제강점기 때 형성된 군사 기지가 있는 도시들은 사령부를 보호하기 위해 방사형으로 형성된 경우가 많지만 군산 같은 상업 도시는 바둑판 모양으로 구역을 나눴다”고 설명했다.

또한 장미(藏米)동은 쌀을 오래도록 창고에 쌓아둔 데서 붙여진 이름으로 일제강점기 때 쌀 수탈의 중심지였던 군산의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 관장은 “군산이라는 도시가 가진 물류·유통 기능의 역사는 고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래됐지만 군산의 역사를 얘기할 때 일제강점기를 벗어나기는 힘들다”며 “일본은 인천에서 목포 사이에 거점이 될 수 있는 항구가 필요했으며 1890년대 개항 뒤 수탈의 교두보가 됐다”고 말했다. 실제 1908년 전주와 군산을 잇는 전군도로라고 하는 최초의 포장도로가 만들어지고 1912년 호남선 지선으로 철도가 놓이면서 호남 지역의 모든 길은 군산으로 통하게 됐다. 군산이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이 일본으로 빠져나가는 꼭짓점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자연스레 일본인들뿐만 아니라 일제의 토지수탈정책에 의해 삶의 터전을 빼앗긴 충청남도나 경상남도 지역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당시 군산은 일자리가 많았던데다 신분을 속이고 새 출발하기 좋은 지역이었다. 이에 군산은 1920년대 가장 번화한 시기를 누렸으며 1930년대에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군산 원도심의 모습이 대부분 완성됐다.

군산은 일제 강점기 시절의 유산인 ‘적산가옥’이 곳곳에 남아 있다. /사진=고병기기자


일제강점기 시절 지어진 옛 군산세관. 유럽에서 건축을 배운 일본인들이 유럽식 건축양식으로 지은 건물이다. /사진=고병기기자


군산 원도심에 위치한 옛 남조선전기주식회사 건물. 남조선전기주식회사는 일제시대 때 전북과 충남 지역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설립됐다. /사진=고병기기자


적산가옥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 ‘소설여행’ /사진=고병기기자


고(故) 이영춘 박사가 거주했던 적산가옥 /사진=고병기기자


일본인들은 군산의 산업과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군산을 대표하는 빵집이자 가장 오래된 빵집으로 알려진 ‘이성당’도 1900년대 일본인이 개업한 ‘이즈모야’가 시작점이었으며 이후 한국인이 인수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또한 과거 군산 경제를 이끌었던 향토기업인 백화양조와 경성고무 역시 그 시작은 일제강점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군산은 쌀 수탈의 중심지였기에 쌀과 관련된 정미소나 양조장이 많이 들어섰으며 쌀을 원료로 발효시키는 청주 생산지로 유명했다. 이 같은 배경에서 1945년 백화양조가 설립됐으며 지금도 ‘백화수복’은 대표적인 청주로 여겨지고 있다. 백화양조는 1985년 두산그룹에 인수된 후 지금은 롯데로 넘어갔다.

군산은 나라쓰케라고 불리는 울외장아찌가 유명하다. 군산 지역에서 전국 울외의 70~80%가 생산되고 울외장아찌에 술 찌꺼기가 들어가기 때문에 자연스레 군산의 특산품이 됐다. 아울러 경성고무는 일본에서 온 사업가가 세운 고무신 공장을 한국인이 인수해 1932년 설립한 회사로 1983년 선경에 완전히 매각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군산을 대표하는 빵집 ‘이성당’ /사진제공=이성당


군산은 일본인들의 영향을 크게 받은 동네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미군이나 중국인들도 군산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미군은 해방 이후 일본이 건설한 전투비행기지를 접수해 미 공군 비행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에 원도심 영화동에는 한때 웨스턴바를 비롯해 미군을 위한 생활편의시설들이 즐비했으며 지금은 신도시인 수송동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일본인들이 들어오기 한참 전인 임오군란 때부터 화교들이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중국 문화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군산이 짬뽕으로 유명한 것도 그런 이유다. 군산에서 지역관리회사인 ㈜지방을 운영하고 있는 조권능 대표는 “군산의 매력은 ‘개방성’”이라며 “타자들의 도시, 이방인들로 구성된 지역이라는 특징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떠나는 이를 아쉬워하지 않는 지역민들의 정서와 삶 속에 녹아 있다”고 말했다.

군산 원도심 영화동은 과거 럭키마케트와 같은 미군들의 생활편의시설들이 밀집돼 있던 지역이다. 최근에는 이 같은 자원을 재활용해 창업에 나서는 젊은 창업가들이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사진제공=㈜지방




영화타운에 위치한 ‘럭키마케트’. 군산 비행장에 근무하는 미군들으 고향 음식과 같은 필리치즈스테이크 햄버그를 파는 가게다. 영화동에 과거 미군들이 자주 이용하는 생활편의시설이 몰려 있었다는 점에 착안해 창업한 가게다. /사진=고병기기자


군산에는 과거 임오군란 때부터 중국인들이 거주하기 시작했다. 군산에 중국집이 많고 짬뽕이 유명한 것도 그런 이유다. /사진=고병기기자


이처럼 군산은 그 어느 도시보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매력적인 도시지만 경제적으로 보면 해방 이후 갈수록 어려움을 겪게 됐다. 1980년대 이후 백화양조와 경성고무·한국합판 등 3대 향토 기업이 차례차례 무너지면서 산업 기반이 붕괴됐다. 이후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에 공단이 형성되고 두산인프라코어, OCI, GM(옛 대우자동차), 현대중공업 등이 공장을 돌리면서 제조업 일자리가 늘어나고 군산 인구도 30만명을 넘기기도 했으나 현대중공업과 GM이 문을 닫고 최근에는 OCI도 폴리실리콘 공장 문을 닫으면서 지역 경제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군산 인구도 계속 줄어 현재 26만명 수준에 그치고 있다.

현재 군산은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정체된 상황 속에서 미래의 희망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한편에서는 여전히 굵직굵직한 제조업 유치와 새만금 활성화를 통해 군산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실현 가능성은 요원해 보인다. 오히려 군산의 미래에 대한 희망은 군산이 가진 자원들을 재활용해 지역 기반 창업을 통해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이들로부터 피어나고 있다. 생명력이 다해가던 영화시장을 재단장한 ‘영화타운’과 SK의 지원으로 구도심 영화동에서 도시 및 지역재생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로컬라이즈’가 좋은 예다. 이곳에서는 소위 말하는 밀레니얼 세대가 군산이 가진 다양한 문화자원들을 창의적으로 재해석해 정체되고 어두운 군산을 역동적이고 밝은 이미지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영화타운을 운영하는 조권능 대표는 미군 영향을 많이 받은 영화동의 역사적 배경을 반영해 미군들에게 고향 음식과 같은 필리치즈스테이크 햄버그를 파는 ‘럭키마케트’도 운영하고 있다. 웨스턴바에서 바텐더로 일했던 백인창 씨는 술을 제조했던 경험을 살려 지금은 영화타운에서 ‘수복’이라는 술집을 운영하면서 ‘백화수복’을 포함해 전통주를 판매하고 있다.

생명력이 다해가는 ‘영화시장’을 재탄생시킨 ‘영화타운’ /사진=고병기기자


SK의 지원으로 진행되는 로컬라이즈는 군산과 비군산 지역 23개팀을 선정해 군산을 기반으로 창업하려는 이들을 지원하고 있다. /사진=고병기기자


로컬라이즈는 지난해 군산 지역 9개팀과 비군산 지역 14개팀 등 총 23개팀을 선정해 군산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실현하려는 창업가들을 돕고 있다. 특히 군산과 같이 젊은 창업가들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로컬라이즈를 통해 외부에서 들어오는 창업가들이 큰 힘이 되고 있다. 로컬라이즈를 운영하는 이슬기 언더독스 매니저는 “지역 창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외부에서도 창업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외부 창업가들이 타 지역에 정착하고 창업을 하기 위해 어떠한 것들이 필요한지 알아보고 지원했다”며 “실제 군산에서는 타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전파하는 새로운 에너지와 활기찬 기운을 통해 지역 내 다소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살아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군산시 도시재생 사업을 자문하고 기획에 참여하기도 했던 윤주선 건축도시공간연구소 박사는 “중요한 것은 흥미로운 운영자들이 마음껏 활약할 수 있는 판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현재 군산은 지역관리회사 ㈜지방을 구심점으로 지역 내외의 매력적인 운영자들이 모여 서로 네트워킹하면서 지방재생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아직 군산의 미래를 낙관하기는 이르다. 윤 박사는 “조선과 자동차 등 기간산업의 공백이 생긴 군산은 여전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며 “매년 관광객 수가 증가하고 있지만 트렌드를 좇는 관광객만으로는 한계가 있기에 제조업과 식품업·유통업의 기초체력 강화와 생태계 구축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행스러운 점은 현재 군산에서 활동하는 젊은 운영자들 스스로 이 같은 문제점을 잘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 대표는 “로컬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이벤트보다는 단단한 일상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낙후된 지역을 개발하는 것 못지않게 함께할 청년들을 찾아 함께 일하면서 관계망 형성에 집중하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더 이상 제조업 중심의 대기업 유치에 혈안이 되는 것보다는 로컬의 자원이나 문화적 자산을 활용한 산업들을 지역 내에서 다양한 주체들이 만들어 갔으면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기반형 창업이 많아져야 하고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플레이어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군산에서 로컬라이즈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젊은 창업가들이 네트워킹하면서 고민을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언더독스


군산에서 활동하는 젊은 창업가들과 지역 주민들의 단단한 하루하루 일상을 만들고 서로 교류하는 장을 만들어주는 DIT(Do It, togerher) 프로젝트에 참가한 참가자들 /사진제공=(주)지방


실제 조 대표는 최근 ‘후즈데어’와 ‘후즈넥스트’라는 마을호텔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이 같은 지역기반형 창업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매력적인 젊은 창업가들이 만들어가는 군산의 모습이 지방의 미래가 될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 같다.

/군산=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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