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관련 브리핑을 중단하겠다던 외교부가 지난 7일 갑작스럽게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브리핑을 자처한 외교부의 한 고위관료는 중국이 한국 기업인의 예외입국 절차를 신속하게 처리하는 한중 ‘패스트트랙 제도’의 도입 등 K방역의 성과를 알리는 데 열을 올렸다. 그날은 6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29세 남성이 1~2일 이태원 나이트클럽 5곳을 방문해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던 때였다.
코로나19 정국을 거치며 한국은 투명한 정보공개와 우수한 시민의식을 통해 방역 모범국으로 전 세계의 호평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100여곳이 넘는 국가가 진단키트 협조를 요청하는 등 K방역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제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평가도 많았다. 그리고 외교부는 지난 한 달여 동안 K방역의 성과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외교·안보 및 국가위상 제고를 위해 공급 필요성이 있는 국가에 방역 필수품목인 N96 마스크까지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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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태원 클럽발 확진자는 10일 정오 기준 54명으로 2차 유행을 우려할 수준의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코로나19에 대한 백신 등 확실한 해법이 나오기 전까지 완벽한 방역은 없다는 것이 현실로 입증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의 K방역 띄우기에 치중된 외교가 모래 위에 지은 성처럼 언제든 허물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는 외교가 K방역 홍보보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코로나19 이후 국제공조가 강화될 수도 있고 국경의 장벽이 높아진 각자도생의 세계가 될지 어느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과거 대공황 못지않은 세계적인 경기침체는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진단이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개방경제인 한국의 외교가 나아갈 길도 우리와의 교역 규모가 큰 중국뿐 아니라 미국과 일본 등 전통적인 교역국가들과 협력적 국제질서를 잘 유지하는 데 놓여 있다. 외교부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생존을 위해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판결 문제 등 K방역 홍보보다 시급한 외교 현안을 풀기 위해 모든 외교적 역량을 발휘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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