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기간에 결혼식은 없다시피 했는데 이제 아주 조금씩 회복되네요.”(예식장 체인 대표 S씨) “임신을 기피하는 경우가 많아 새로운 임산부는 별로 없어요.” (서울 정릉의 산부인과 원장 K씨)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결혼과 임신을 주저하면서 올해 말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인구절벽이 우려된다. 지난해 12월 중국 우한에서 급속히 퍼진 코로나19가 우리나라에 지난 2월부터 본격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 11월부터 신생아 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지난해 30만명대(30만3,100명)를 간신히 지켰던 출생아 수가 20만명대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1970년 전후 100만명 이상이 태어나던 때에 비하면 신생아가 엄청나게 줄어든 것이다.
앞서 2002년 말 사스의 직격탄을 맞은 홍콩에서도 9개월 뒤 출산율이 확 떨어졌다. 2015년 지카바이러스의 공격을 받은 브라질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도 2003년 사스나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출산율에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났다. 여성 한 명당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이 2004년에 전년보다 0.03명 감소한 1.16명, 2016년은 0.07명 줄어든 1.17명으로 떨어졌다. 바이러스뿐 아니라 가치관의 변화, 경제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합계출산율은 2018년 0.98명으로 1명대가 붕괴된 뒤 지난해 0.92명까지 추락했다.
예식장 7곳을 운영하던 S씨는 “심각한 저출산에다 결혼 기피, 코로나19까지 겹치며 경영난이 심해 6곳의 문을 닫고 한 곳만 운영하고 있다”며 “예식장이 경영난으로 임대료를 3개월간 내지 못하니 건물주가 권리금이나 시설투자비도 쳐주지 않고 내쫓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코로나19, 인구절벽 가속화 방아쇠 당겨
일부에서는 과거 폭설·태풍 등 자연재해 당시 일시적 베이비붐 현상이 나타났다는 점을 들어 코로나 베이비붐을 기대하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재택근무 등으로 부부가 집에서 같이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기는 했으나 바이러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사태인데다 경제상황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미국에서 2010년 2월 동부 대폭설, 2012년 10월 허리케인 샌디, 2001년 9·11테러가 발생한 지 9개월 뒤 일시적으로 베이비붐이 있었으나 이번에는 경우가 다르다는 얘기다.
이탈리아 피렌체대 연구팀이 이동봉쇄 조치 3주째에 1년 이상 부부·커플 관계인 1만5,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임신 계획이 있었던 응답자 중 3분의1이 포기했다고 답했다. 세계적으로 콘돔이나 성인용품 판매가 늘었다는 점을 베이비붐의 전조로 보는 것이 엉터리임을 알 수 있다. 코미디언 출신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3월 코로나 자택대피령을 내리며 “국가적 저출산 위기 타파에도 힘써달라”고 한 말이 코미디로 그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항바이러스·항치매 천연물 의약품을 개발하는 주성수 국립강릉원주대 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이 토착화되는 앤데믹으로 전환될 것으로 우려되는데 감염 위험과 경제상황 악화로 결혼·임신·출산·육아 회피가 두드러질 것”이라며 “코로나로 오히려 이혼율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빨리빨리’ 인구 감소 속도도 세계 최고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의 가족계획 표어 중 하나다. 1960~1970년대만 해도 시골에서 5남매를 두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기자의 시골 친구 부모님 중에는 아들을 보겠다며 7명까지 출산한 경우도 있었다. 자연스레 동네 골목길은 아이들로 항상 왁자지껄했다. 기자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한 반이 60명선으로 전교생이 2,000여명에 달했는데 늘 교실과 복도·운동장이 콩나물시루처럼 비좁았다. 그런데 그 초등학교의 전체 학생이 62명에 그친다고 하니 저출산과 시골 공동화가 얼마나 심각한지 실감할 수 있다.
이황근 전북 고창교육지원청 교육장은 “1990년대에 인근 초등학교 분교 두 군데가 폐교돼 그쪽 학생까지 합친 것이 그 정도”라며 “시골에서는 아이 울음소리를 듣기 힘들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시골에서는 ‘노동력이 자산’이라는 인식이 있어 다산(多産)이 일반적이었다. 오히려 정부는 산아제한운동을 통해 식량난에서 벗어나 가난을 탈피하고 1인당 국민소득을 높이려고 했다. 이후 급속한 도시화와 핵가족화로 둘만 낳기에서 한 자녀 낳기가 됐다가 어느새 한 자녀도 낳지 않는 경우가 적잖은 시대로 바뀐 것이다.
◇저출산·고령화는 국가적 재앙
저출산·고령화는 경제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부담이다. 15~64세의 생산활동 종사자가 줄면 소비가 위축되고 기업활동도 활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경제성장률이 급감하며 내수가 쪼그라들면 기업은 해외로 나가게 된다. 생산활동 종사자의 65세 이상 노인 부양 비율도 높아지게 된다. 노인 부양 비율은 지난해 5명당 한 명꼴이었으나 2050년에는 한 명당 한 명꼴로 바뀐다. 인구절벽이 30년만 더 지속되면 우리 사회에 재앙이 닥치는 것이다. 그만큼 세금 부담도 커지고 국가재정도 악화한다. 학생이 적어지면 교사도 줄이고 학교도 다른 용도로 쓰게 된다. 병역의무자가 감소하면서 병역도 모병제로 바꿔야 할 날이 올지 모른다. 지역 공동화가 심화하며 도시에서도 중심지에만 몰려 살 뿐 신도시나 시골은 공동화될 수 있다.
일본의 경우 1970년대 조성된 도쿄 주변 신도시가 텅텅 비어 있다. 일본과 이탈리아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인구감소까지 겹치며 성장률이 제로 수준이거나 마이너스를 보이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이런 경향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일본은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생산가능인구가 1990년 고점을 찍고 뚝 떨어지며 경제성장률이 동반 추락했다.
괄티에로 알비시 이탈리아 파도바대 교수는 “이탈리아는 총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는데 수년째 제로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며 “일본과 함께 세계에서 제일 높은 수준의 고령화가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이탈리아보다 훨씬 빠른 고령화 속도
문제는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가 고령화가 가장 심각한 일본이나 이탈리아보다 매우 빨리 진행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만 해도 100만명대였던 출생아 수가 2002년 40만명대, 2017년에는 30만명대로 세계에서 유례없는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출생아가 사망자보다 적은 자연감소가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지난해 출생아 수도 30만3,100명으로 2018년(32만6,800명)보다 7.3% 줄었다. 인구 유지를 위해 필요한 합계출산율은 2.1명인데 우리는 지난해 0.92명으로 세계에서 1명도 안 되는 유일한 국가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의 평균 합계출산율 1.65명(2017년 기준)을 크게 밑돈다.
지난해 혼인 건수는 23만9,210건으로 2018년보다 1만8,412건이나 줄었다. 통계청은 2017년 발표한 ‘미래 인구 추계’에서 출생아 수가 2017년 35만명에서 2067년에는 21만명으로 급감할 것으로 내다봤다. 2025년에는 65세 이상이1,051만명으로 전체의 20%를 차지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며 2050년에는 65세 이상이 1,901만명으로 폭증할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 14세 이하 유소년은 2017년 672만명에서 2030년 500만명, 2067년 318만명으로 급감할 것으로 점쳤다. 전체 인구는 저출산에도 고령화 진행과 외국인 유입으로 2029년 5,194만명까지 늘었다가 감소하게 된다.
윤종록 한양대 특훈교수는 “지금과 같은 식이라면 3년 전 통계청의 예상보다 저출산이 더 심각한 양상으로 갈 것”이라며 “장기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급격히 둔화될 수밖에 없어 생명과학 중심의 새로운 경제를 통한 성장동력 확충과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저출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게 청년 일자리를 확충하고 보육·교육환경 구축과 부동산 값 안정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민정책도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국·유럽에 이어 일본도 이제는 선별적으로 이민을 받아들이고 있다. 2000년 초 인구감소가 시작된 독일의 경우 노사정 대타협을 이루고 이민을 허용하면서 경제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북한의 젊은층 인구가 남한보다 상대적으로 많아 장기적으로 남북통일이 인구 문제의 한 해법이 될 수도 있다.
임태환 대한민국의학한림원 회장은 “코로나19 사태에서 K방역이 세계적 롤모델이 되면서 젊은이 사이에 ‘헬조선’이라는 말은 들어갔지만 결혼해 아이를 낳겠다는 동기 부여는 되지 못하고 있다”며 “인구감소를 최대한 늦추며 변화된 상황에 적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인구 감소 필요” 주장도
일부에서는 ‘저출산 망국론’에 반대하면서 인구 쇼크가 재앙이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오히려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인구가 줄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세계 인구가 78억명에 달하는 상황에서 저출산·고령화를 지구와 인류라는 시각에서 폭넓게 보자는 지적이다. 미국 애리조나대의 앨런 와이즈먼 국제저널리즘 교수는 ‘인구 쇼크’라는 책을 통해 “지구촌에서 4.5일마다 100만명씩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데 환경 문제, 자원 고갈, 지구온난화 등이 심각해진다”고 지적했다. 이는 인구가 소비와 노동의 원천이라는 전통 경제학적 관점에서 벗어난 것으로 인구가 줄어도 조화로운 성장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인구감소로 국내총생산(GDP)은 줄어도 1인당 생산성이나 소득이 감소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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