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사태로 일자리가 급속도로 줄어들면서 노사정 회의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22년만에 처음 열렸다. 회의체 구성을 주도한 정세균 국무총리는 첫날부터 “일자리 상황이 심각하니 최대한 빨리 뜻을 모아야 한다”고 재촉했지만 노사 간 요구사항이 너무 다른 데다 양대노총의 신경전도 이어지고 있어 실질적 성과를 끌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찮게 제기된다.
정 총리와 김명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 김동명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위원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등은 20일 서울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에서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회의’를 가졌다. 이 회의는 정 총리가 4월 중순부터 노사 단체 등에 제안해 마련됐다. 양대 노총을 포함한 노동계, 재계, 정부 경제 주체들이 경제·고용 대책을 한 자리에서 논의한 것은 외환위기 때인 1998년 노사정위원회 출범 이후 처음이다. 노사정회의는 이번 주부터 실무협의를 시작해 쟁점이 해소가 안될 경우 차관급, 장관급으로까지 논의 주체를 격상한다는 복안이다.
정 총리는 이날 “심각한 일자리 상황 앞에서 지체하거나 주저할 수 없다”며 “정부가 노동자의 일자리와 기업의 경영 안정을 위해 24조원 규모의 두 차례 추가경정 예산을 편성하고 3차 추경을 준비하는 등 지금도 전력을 다하고 있지만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4월 취업자 수가 작년 같은 달에 비해 약 48만명이 줄어 외환위기 당시인 1999년 이후 최대 감소폭을 기록했고 내수 서비스업에 이어 수출 제조업까지 어려움이 확대되고 있다”고 걱정하며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뜻을 모은다는 목표 아래 비상한 각오를 갖고 논의에 임해 주길 부탁한다”고 말했다.
다만 정 총리의 의지와 달리 재계와 노동계에서는 이번 회의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성과를 도출하긴 힘들 것이란 관측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우선 회의체 구성 과정에서부터 양대 노총 사이에서 잡음이 발생했다는 점이 부정적 전망의 근거로 꼽혔다.
이번 회의는 공식 사회적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바깥에서 개최된다는 점에서 출범 전부터 한국노총 측의 반대에 부딪혔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지난 4월17일 ‘경사노위 외 원포인트 노사정협의’를 제안한 뒤 정 총리가 한국노총·민주노총·경총·상의 지도부를 잇따라 만났지만, 한국노총은 경사노위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정 총리의 제안에 거리를 뒀다. 한국노총은 같은 달 29일 중앙집행위원회가 지도부에 결정을 위임한 뒤 12일이 지나서야 정 총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양대 노총 간 이 같은 신경전은 회의체 출범 이후에도 이어졌다. 한국노총 측은 본회의 전 실무회의 과정에서 합의 사항 이행과 점검은 경사노위를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노총 내부에서는 코로나19 이후에도 민주노총의 요구대로 경사노위 외에서 또 다른 협의가 이어지면 사회적대화를 이끌어왔던 한국노총의 위치가 흔들릴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경제 단체들이 중소기업, 소상공인들의 의견까지 두루 듣고 논의에 참여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노사 요구사항 간 간극이 너무 크다는 점은 재계와 노동계 모두 우려하는 부분이다. 노동계는 이번 회의에서 총고용유지(해고 금지)·생계보장·사회안전망 확충 등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재계는 유연근로제(탄력근로제와 선택적 근로시간제)·직무급제·양보교섭(임금 인상 자제)이라는 큰 줄기 안에서 구체적인 요구안을 다듬고 있다. 특히 재계는 ‘포스트 코로나’에 대비해 시간·장소가 자유로운 근무를 위한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 기간 확대가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인데 이는 지난해 경사노위에서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논의할 당시 노동계가 강하게 반대했던 내용이다. 노동계의 요구안은 항공 등 기간산업 금융지원·긴급재난지원금·전 국민 고용보험 등 문재인 정부를 중심으로 이미 시행됐거나 추진 중인 내용이다.
경총 관계자는 “유연근로제는 당연히 요구안에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민주노총 관계자는 “코로나 정국에서 기업의 몸집만 불리려고 하는 의제나 방향은 맞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관계자는 “경제 침체 국면에서 기업이 원하는 것은 구조조정인데 요구하기는 어렵고 선택근로제는 노동계에서 크게 반발할 것”이라며 “의미 있는 합의는 이루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윤경환·변재현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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