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8일 특수장비가 실린 러시아 정찰기 ‘투폴레프(Tu)-154M’이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트래비스 공군기지를 이륙했다. 비전투기의 상대국 영공 정찰을 허용한 ‘오픈스카이스조약(Open Skies Treaty·항공자유화조약)’에 따른 것으로 그해에만 39번째 비행이었다. Tu-154기에는 미국 측 감시단도 탑승했다. 약속된 비행노선을 지키는지 등을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이륙 전에 탑재된 영상기록장치가 조약에 규정된 기준을 준수하는지도 확인했다.
러시아 정찰기는 이후 엿새 동안 미국 영토·영해 상공을 날면서 군사상황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일주일 후 미국 정찰기 ‘OC-135B 오픈스카이’가 러시아 상공 순찰에 나섰다. 이 정찰기에는 4대의 고성능 카메라가 실려 있었다. 3대는 900m 저공비행용, 나머지 1대는 1만m 중고도비행용이었다. 이 카메라들은 작은 동물까지 구별 가능한 해상도를 자랑하지만 조약에 따라 영상은 탱크·트럭을 식별할 수 있는 군사용 품질 수준까지로 제한됐다.
오픈스카이스조약은 군사력 배치 상황과 군사활동 등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가입국 상호 간의 자유로운 비무장 공중정찰을 허용하는 국제협약이다. 민간항공기의 자유로운 운항을 보장하는 ‘항공자유화협정(오픈스카이)’과는 구별된다. 1955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우발적 핵전쟁 등을 막기 위해 옛소련에 서로 영토를 넘나드는 공중정찰 비행을 하자고 제안한 것이 시발점이다. 이 시도는 소련의 거부로 무산됐으나 1989년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이 논의를 부활시켰다. 3년간의 협상 끝에 미국과 러시아는 1992년 3월 조약을 체결했다.
유예기간을 거쳐 10년 뒤인 2002년 공식 발효했는데 현재 나토 회원국과 러시아·우크라이나 등 동유럽국가를 포함해 34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조약에 따라 지금까지 이뤄진 정찰비행은 1,500회를 넘는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21일 이 조약에서 탈퇴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모스크바와 체첸 부근의 비행을 제한하는 등 조약을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중거리핵전력(INF)에 이어 오픈스카이스조약 등 군축 협상 성과들이 흔들리고 있어 군비경쟁이 재연될까 우려된다.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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