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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혁신성장 발목잡은 건 심판...전통산업-신산업 공정경쟁 방해 말아야"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

정부·지자체·정치권, 전통산업 편들며 불공정한 경기 운영

코로나19로 비대면 사업 확장...디지털 스타트업에 기회

한국판 뉴딜로 내수 진작 넘어 산업전반 시너지효과 내고

'기울어진 운동장' 고쳐 각 분야 글로벌 1위 만들어 내야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는 지난 22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뉴딜이라고 해서 내수 진작에만 신경을 쓸 게 아니라 정보기술(IT)·문화관광·제조업 등 산업 전반에서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형주기자






애플·우버 등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도 공격적인 인수합병(M&A)에 나서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화상회의, 음식 배달 서비스 등 언택트(비대면) 비즈니스가 관련 분야에서 경쟁력 있는 스타트업에 대한 M&A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코로나19 사태에 모범적으로 대처하면서 ‘K방역’이라는 찬사를 받은 우리나라에서도 언택트 비즈니스가 상대적으로 많은 스타트업이 눈길을 끌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에는 예정됐던 투자마저 끊기며 어려움을 겪었지만 사태가 진정되면서 조심스럽게 기회를 모색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스타트업계 대부’로 잘 알려진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는 지난 22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K방역을 통해 국격이 높아진 지금이야말로 코로나 청정국이라는 위상을 산업 전반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며 “뉴딜이라고 해서 내수 진작에만 신경을 쓸 게 아니라 정보기술(IT)·문화관광·제조업 등 산업 전반에서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혁신산업 분야에서 글로벌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심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현행 법·제도의 틀 안에서 얼마든지 사업을 할 수 있지만 잘 안되는 것은 기울어진 운동장 때문”이라며 “이해관계가 얽힌 전통산업의 편만 들려고 하는 정치인이나 정부부처·지방자치단체 공무원 등 심판들이 불공정하게 경기를 운영하는 게 문제의 핵심”이라고 꼬집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판 뉴딜’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디지털 신산업 분야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데.

△뉴딜이라고 하면 흔히 토목공사 등을 떠올리기 쉬운데 디지털 신산업 육성 의지를 드러낸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K방역으로 뜨고 있는 진단키트 등 바이오는 물론 소프트웨어·IT 등 미래산업에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 특히 ‘코로나 청정국’으로 급부상한 국가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면 더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예컨대 미국 실리콘밸리 유망 스타트업을 국내로 유치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실리콘밸리의 상당수 기업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지만 매우 고통스러운 상황이다. 코로나 청정국인 한국에서 사업을 할 수 있다고 하면 충분히 기업을 유치할 명분이 된다. 최근 KBO리그가 세계 최대 스포츠 전문 채널인 ESPN을 통해 미국·일본에 생중계되고 있는데 역으로 프리미어리그를 국내에서 유치하는 발상의 전환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방역은 철저하게 해서 진단검사 및 자가격리 수칙을 잘 지키면 될 것이다. 실제로 전 세계 주요 방송사들이 콘텐츠가 없어 넷플릭스에 고객을 빼앗기는 형편인데 역으로 우리나라를 ‘셸터(shelter·대피처)’로 활용해 스포츠 경기도 하고 드라마·영화 촬영도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각 산업 분야에서 유망 기업이나 인기 콘텐츠를 유치하면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된 후에도 우리 자산이 될 수 있다. 한국판 뉴딜이라고 해서 내수 산업만 진작시킬 게 아니라 글로벌 시각을 갖고 세계의 중심이 되는 전략을 세밀하게 세워야 한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하지 않은가.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는 지난 22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뉴딜이라고 해서 내수 진작에만 신경을 쓸 게 아니라 정보기술(IT)·문화관광·제조업 등 산업 전반에서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형주기자


-지난 얘기이지만 ‘타다 금지법’ 강행이 스타트업계에 많은 실망을 안겼는데.

△정치논리에 휘둘려 사업을 접게 됐다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 스타트업계에서는 타다 사태를 계기로 혁신이 뒷전으로 밀렸다는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부 내부에서도 제각각 서로 다른 시그널을 주면서 혼란을 키웠던 게 사실이다. 사업하는 입장에서 보면 일관성이 없다는 것,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나쁜 점이다. 타다는 그러한 측면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모빌리티 산업 전반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모빌리티 산업의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서 투자가 확 줄었고 이 분야 창업 열기도 차갑게 식었다. 결국 대규모 자본을 동원할 수 있는 대기업만 독식하는 시장이 되는 것이다.

-규제 때문에 창업하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많다.

△산업현장을 잘 살펴보면 규제 자체보다는 심판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산업이 뿌리내리다 보면 타다 사례처럼 전통산업과 혁신산업이 충돌하는 지점이 반드시 생긴다. 현행 법·제도의 틀 안에서는 전통산업이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시작하는 셈이다. 그런 부분을 점차 개선하면서 혁신을 일궈야 하는데 오히려 심판이 한쪽으로 치우쳐 혁신의 싹을 잘라버리는 일이 많다.

-실제로 혁신산업을 추진하다가 접은 사례도 적지 않을 것 같은데.

△방문 네일아트라는 아이템을 갖고 창업한 팀이 있었다. 고객이 네일아트숍을 직접 찾아가지 않고도 모바일을 통해 예약하고 방문 서비스를 받는 O2O(Online-to-Offline) 사업이었다. 하지만 공중위생관리법을 위반했다며 구청 공무원이 여러 차례 찾아왔고 결국 제대로 시작하지도 못하고 사업을 접게 됐다. 무조건 안 된다고 선을 긋기보다는 현행법 안에서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은 무엇인지, 왜 안 되는 것인지 알려줄 수는 없었을까. 어차피 법이라는 게 관습이나 삶의 방식 속에서 만들어진 만큼 변화를 흡수하면서 혁신을 키워야 하는 게 아닌가.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는 지난 22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뉴딜이라고 해서 내수 진작에만 신경을 쓸 게 아니라 정보기술(IT)·문화관광·제조업 등 산업 전반에서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형주기자


-혁신산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결국 심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지적인데.

△스타트업계를 보면 음성적인 곳에서 불공정하게 심판이 이뤄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지자체 공무원이나 중앙부처 말단 공무원이 사무실까지 찾아와 협박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해관계가 있는 오프라인 사업주의 민원을 받고 움직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스타트업들은 사회생활 경험도 없고 관련 법령도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당하기 쉽다. 이런 약점을 파고들어 (사업을 접으라고) 협박하는 것이다. 규제만 뜯어고치면 미래로 가는 새로운 문이 열릴 것처럼 착각하는데 아무리 좋은 제도가 있어도 심판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쓸모없는 법이다.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는 게 미래의 문을 여는 동시에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다. 한쪽에서는 온갖 구실을 붙여가며 발목을 잡고, 다른 한쪽에서는 규제 샌드박스 등을 내세우며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하지만 둘 다 혁신에 독(毒)이 될 뿐이다. 스타트업을 키운다면서 규제 샌드박스 안에 넣어 ‘온실 속 화초’처럼 키울 필요도 없다. 산업현장의 플레이어들이 공정한 경기를 할 수 있게 심판이 제 역할만 제대로 하면 된다. 공정하게 심판만 해도 지금 스타트업계가 안고 있는 문제가 상당 부분 풀릴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제2의 네이버나 카카오가 나올 수 있을까.

△2000년대 초반 벤처 붐 이후 시가총액이 조 단위에 이르는 회사가 10개 이상 나왔다. 포털·게임 등 각 분야에서 훌륭한 기업들이 성장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성과다. 글로벌 경쟁이 격화하고 있는 만큼 10년 후 삼성과 같은 글로벌 회사가 각 분야에서 나와줘야 현재의 국격을 유지할 수 있을 텐데 지금으로서는 전망이 밝지 않다. 초연결사회로 가고 있기 때문에 전 세계 기업들이 해당 분야의 글로벌 넘버원 자리를 놓고 벌이는 싸움이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불공정한 심판이 유지된다면 그나마 싹을 틔우는 기업들조차 희망을 품기 어려울 것이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언택트 비즈니스가 부상하면서 쿠팡이 주목받고 있는데.

△글로벌 1등은 힘들어도 아시아 1등은 가능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하고 있다. 유통 ‘빅3’로 쏠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쿠팡은 힘들지만 여기까지 잘 왔고 코로나19로 인한 성장 모멘텀을 잘 활용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다. e커머스 국내 1등 기업으로 올라섰지만 여전히 녹록지 않은 경영환경이다. 쿠팡 정도의 시장지배력이나 매출만 놓고 보면 1조원 이상의 회사채를 손쉽게 발행할 수 있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아시아에서 1등이 될 수 있는 글로벌 기업을 키운다는 긴 시각으로 봐야 하지만 여전히 혁신산업에 대한 지원은 부족한 형편이다. 단적으로 조선·항공 등은 기간산업이라는 이유로 지원자금을 수조원씩 쏟아붓고 있는데 쿠팡 같은 기업에 10조원 정도 투자해 동남아시아 1위를 할 수 있게 지원하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이런 식의 발상 전환을 주무부처 장관들이 적극적으로 해주면 좋겠다.

-해외처럼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 설립을 허용하는 방안이 정부 여당에서 논의되고 있는데.

△대기업 계열의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이 모기업과 연관된 투자만 하면 큰 의미는 없다. 다른 업종에 투자함으로써 기술과 산업의 흐름을 지켜보고 학습하는 레이더망으로 활용해야 한다. 굳이 연관산업에 투자하는 것은 중복투자에 불과하다. 구글이나 인텔과 같은 글로벌 기업만 봐도 모기업과 투자전문회사의 포트폴리오는 완전 별개로 움직인다. CVC를 통해 광범위하게 투자해 시야를 넓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망원경이 아니라 확대경을 만들어서 시장의 흐름을 읽고 이를 통해 기존 사업에도 접목하면서 새로운 사업 구상에 활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마치 혈액 투석을 하듯이 남의 신선한 피를 내 몸 안에서 한 바퀴 돌린다고 보면 된다.

/정민정 논설위원 jminj@sedaily.com

He is

1963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경북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데이콤에 입사해 행정전산실과 종합연구소 등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다. 정보보안 업체인 이니텍과 전자결제 업체인 이니시스를 잇따라 설립해 국내 1위로 성장시킨 뒤 두 회사를 2008년 미국 투자회사에 매각했다. 2010년 1월 초기 스타트업을 발굴·육성하는 국내 액셀러레이터 1호 ‘프라이머’를 세웠으며 지금까지 스타일쉐어·마이리얼트립·세탁특공대 등 180개가 넘는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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