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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족의 통치가 광활한 러시아를 통일시켰다

[책꽂이-킵차크 칸국]

■찰스 핼퍼린 지음, 글항아리 펴냄





‘러시아의 통일은 킵차크 칸국이 사라지고 난 뒤에 몽골족으로부터 배운 일부 행정 방식을 활용한 모스크바 공국이 동북부 러시아를 통합하는데 성공하면서 비로서 이뤄졌다.’

중세 러시아의 통일은 250년 넘게 그들은 통치해온 킵차크 칸국의 문화가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주장이다. 이는 기존에 킵차크 칸국의 지배를 사실상 부정해온 러시아 학계의 입장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동시에 러시아에 대한 몽골족의 일방적인 통치가 아니라 양국이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면적인 관계를 맺어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신간 ‘킵차크 칸국’은 중세 러시아와 몽골의 관계를 새롭게 정리한 연구서다. 책의 제목인 킵차크 칸국은 몽골 제국이 4개의 나라로 분열된 후 키르기스 초원과 남러시아의 킵차크 초원 일대에 세워진 나라다. 킵차크 칸국은 13세기 초부터 15세기까지 통일 이전의 러시아를 지배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러시아는 킵차크 칸국의 지배를 부정해왔다. 차카타이 칸국의 지배를 받은 원나라와 일 칸국의 지배를 받은 페르시아와 달리 킵차크 칸국은 러시아에 상주하며 통치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책에 따르면 킵차크 칸국은 다른 정복국가들과 달리 러시아에 대한 직접적인 점령이 불필요하다고 판단한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흑해와 카스피해 초원의 거대한 목초지는 대규모 유목민 군대를 먹여 살리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실제 킵차크 칸국이 러시아를 지배하던 250여년간 일부 극소수의 몽골족만이 러시아 삼림지대에 거주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외에도 킵차크 칸국은 러시아 정복 이후에도 그들의 기존 정치 구조는 물론 지배계층이 지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했고, 방계를 통한 왕위 계승도 인정했다. 어수선한 시기 러시아의 정치적 기반을 그대로 놓아두었던 것이다.

이같은 지배방식으로도 킵차크 칸국은 오랜 기간 러시아를 통치하는데 성공한다. 이에 대해 책은 양국은 오랜시간 복잡한 관계를 유지돼왔다고 설명하고 있다. 킵차크 칸국의 전투에 러시아 군대가 참여하기도 하고, 러시아 공작들은 킵차크 칸국의 타타르족 여성을 아내로 삼기도 했다. 또 러시아 정교회는 킵차크 칸국의 후원 아래 재산과 영향력을 급속도로 키워 이후 국교로서의 기반을 마련했다. 책은 훗날 러시아를 통일한 모스크바 공국이 권력을 강화하는 과정에도 킵차크 칸국의 수많은 제도를 활용했다는 점도 캅차크 칸국이 러시아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전쟁은 물론이고 평화적인 측면과 정부와 상업에서, 사회와 경제에서 중세 러시아인의 모든 계층의 삶에 끼친 킵차크 칸국의 영향이 가진 깊이와 복합성을 재평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이 책은 러시아 공작들이 킵차크 칸국에 무릎 꿇었던 시대의 장막을 걷어 올리기 위한 시도”라고 말했다.
/최성욱기자 secre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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