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찰청은 지난 12일 “서울중앙지검으로부터 수사심의위 요청서가 접수됨에 따라 검찰총장은 수사심의위 소집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검은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운영지침’에 따라 조만간 법조계와 학계, 언론계, 시민단체 등 각계 전문가 150여명 중 추첨을 통해 15명의 위원을 뽑아 사건을 심의할 ‘현안위원회’(수사심의위)를 만든다. 현안위는 이 부회장에 대한 검찰의 기소가 타당한지를 두고 심의한 뒤 이르면 이달 내로 심의 결과를 이 사건 수사팀인 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이복현 부장검사)에 통보한다.
검찰과 이 부회장 간 첨예한 갈등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을 심의 단계 전부터 논란은 공정성 시비로 시작된 셈이다.
양 위원장은 대법관이던 2009년 5월 대법 전원합의체에서 이건희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다수의견을 주도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이 회장은 자녀들의 그룹 지배권 강화를 위해 에버랜드의 전환사채(CB)를 이 부회장에게 싼값에 넘겨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기소됐고, 최종 판결에서 대법관들은 6대5로 무죄를 확정했다.
이 때문에 법조계 안팎에서 양 위원장은 이번 수사심의에 참여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수사심의위원장은 심의 과정에서 사건 당사자인 검찰과 피의자 측에 질문하지 못하고, 표결에도 참여하지 못하지만 심의를 주재하고 총괄해 공정성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양 위원장은 수사심의위 운영지침 제11조에 따라 ‘기피’ 대상이 될 수 있다. 11조3항은 수사, 재판에 관여한 이력이 있는 것은 심의 참여에 부적절하다고 적시됐다. 검찰은 이런 이유로 기피 신청을 할 수 있다. 위원장과 현안위원들 모두 기피 신청 대상자가 될 수 있다. 양 위원장 본인이 직접 ‘회피’ 신청을 함으로써 위원장직을 잠시 내려놓을 수도 있다.
다만 우선 현안위 구성까진 양 위원장이 자리를 지킬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운영지침에 따라 우선 양 위원장은 현안위 구성 단계에서까지는 적어도 위임장 역할을 해야 한다. 운영지침 제10조를 보면 위원장은 위원명부에 기재된 위원 중 무작위 추첨을 통해 15명을 현안위 위원으로 선정한다. 지침상 위원장 없이 현안위 구성이 불가한 것이다.
위원장이 만약 현안위 구성 단계 전에 사퇴를 해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게 될 경우 다음 절차는 무엇인지 지침에 세부적으로 나온 바는 없으나, 새 위원장을 선임할 때까지 관련 절차는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 또 현안위원 추첨 때 검찰은 중앙지검 검찰시민위원 2명을 선정해 추첨에 입회하도록 해 위원장의 현안위원 추첨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입회해 지켜보도록 한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수사심의위는 이미 몇 번 진행돼 경험이 있는 제도긴 하지만, 이토록 첨예한 이슈에선 처음 적용돼 혼란이 있을 법하다”며 “양 위원장 손으로 현안위원을 뽑으면 심의 시작 전부터 현안위원들이 공정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검찰은 현안위원들에 대해서도 기피신청을 해 심의 관련 절차는 더욱 지연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7월 검찰 인사가 예상되는 시점에서 수사심의위 결과가 늦춰지면 이 부회장 수사가 인사와 맞물리면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된다.
법조계에선 양 위원장이 회피 또는 기피될 경우 그 후의 절차에 관심이 특히 모인다.
수사심의위 운영지침을 다시 살펴보면, 제11조는 위원장이 회피 또는 기피 신청의 당사자가 되는 경우에는 현안위원 15명 중 1명을 호선해 위원장의 직무를 대행하도록 한다. 이 경우 직무대행자 역시 질문과 표결에 참여할 수 없다. 이렇게 될 경우 표결에 참여하는 현안위원은 14명이다. 짝수 정원으로 7대7의 심의 결과가 시나리오로 가능해지는 셈이다. 검찰에 따르면 ‘부결’ 결과가 나올 경우 심의는 다시 진행되지 않고 ‘부결’을 끝으로 심의를 종결할 예정이다. 운영지침에도 부결 시 재의결을 한다는 등의 규정은 없다.
결과적으로 이 부회장의 기소 여부가 타당한지를 판단하는 것이 부결될 경우 이를 어떻게 검찰이 받아들일 것이냐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이 부회장에 대한 기소 의견도, 불기소 의견도 검찰에 전달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검찰 안팎에선 부결된 ‘안건’이 무엇인지가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만약 ‘(이 부회장을) 불기소해야 한다’는 게 안건이 부결되면, 불기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말로 해서 기소할 명분이 생긴다고 볼 수 있고, 그 반대로 ‘기소해야 한다’는 게 안건인데 부결되면 기소할 명분이 없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사심의위 소집을 요청한 것은 피의자인 이 부회장 측이기 때문에 ‘불기소해야 한다’는 안건으로 상정된다는 시각이 있다.
한편 이 부회장을 수사한 수사팀은 수사심의위의 결과가 어떻게 나와도 기소를 강행하기로 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수사심의위의 기소 여부에 대한 의견은 권고 사항일 뿐 검찰이 반드시 따라야 할 의무는 없다. 다만 수사심의위가 불기소 의견을 낼 경우에도 기소하면 검찰 입장에선 기소권 남용 방지 차원으로 시작된 제도의 취지를 무시하는 것이라 부담이 커진다. 그럼에도 1년 8개월 간 수사를 하고 방대한 양의 자료와 사건 관련자 진술들을 확보한 검찰은 그만큼 이 부회장의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기소에 방점을 두고 오랜 기간 이어진 특수 수사인데, 어떻게 보면 수사심의위가 무슨 의견을 내놓든 사실 중요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안위의 심의 기일은 이달 말로 예상된다. 위원들은 심의 기일에 검찰과 삼성 측 변호인단이 제출한 A4 용지 30쪽 이내의 의견서를 검토해 기소 권고 여부를 판단한다. 결론은 심의기일 당일 나올 가능성이 크다.
/손구민기자 kmsoh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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