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에 자국의 근대 산업유산을 등재하면서 강제징용 희생자를 기리는 조처를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결국 이행하지 않았다. 특히 일제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의 상징인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 탄광을 소개하면서 강제징용 피해 자체를 부정하는 자료를 전시해 파장이 예상된다.
도쿄특파원 공동취재결과, 오는 15일부터 일반에 공개되는 일본의 ‘산업유산정보센터’의 전시 내용은 메이지 시대 산업화 성과를 과시하는 내용 위주이고, 일제 강점기 징용 피해자를 추모하는 내용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도쿄도 신주쿠구 소재 총무성 제2청사 별관에 세워진 산업유산정보센터는 일본 정부가 자국의 메이지 시대 산업 유산을 소개하기 위해 설치했다. 앞서 일본 정부가 지원하는 일반재단법인 ‘산업유산국민회의’는 이 센터를 지난 3월 31일 개관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영향으로 일반 공개가 미뤄졌다.
심지어 이 정보센터에서는 일제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를 부정하는 증언 동영상까지 전시하고 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어린 시절을 군함도에서 보낸 재일교포 2세 스즈키 후미오씨는 동영상에서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없었다”고 답변했고, ‘조선인을 채찍을 때렸다는데 사실이냐’는 질문에도 “일을 시켜야 하는데 왜 때리겠냐. 그런 것 없었다”고 답했다. 스즈키 씨의 아버지는 군함도 탄광촌에서 ‘오장’(팀장급 관리자)으로 일했고, 그는 아버지의 경험에 기초해 증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군함도에서 일한 대만 사람이 “급여를 정확히 현금으로 받았다”고 증언하는 내용과 함께 월급 봉투도 전시돼 있다. 군함도에선 ‘노예노동’이 없었고 조선인에 대한 차별도 없었으며, 월급도 제대로 지급됐다고 주장하기 위해 군함도 생존자의 증언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일제 강점기 메이지 산업유산 중 군함도를 비롯해 야하타 제철소·나가사키 조선소·다카시마와 미이케탄광 등에는 한국인(조선인) 3만3,400명이 강제 동원됐다. 특히 군함도에서는 1943∼1945년 500∼800명의 한국인이 강제 노역을 했으며, 122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전시 내용은 일본 정부가 국제사회에 한 약속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으로 논란이 예상된다. 지난 2015년 유네스코는 메이지시대 산업유산 23곳에 대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결정할 때 일본으로부터 역사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조치를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약속과 달리 강제징용 희생자를 기리는 조처를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해당 사실 자체를 부정하면서 한일 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전희윤기자 heeyoun@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