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대한민국에 온 지 벌써 60년이 됐으니 저도 한국인입니다. 한국에 살다 고향인 충북 청주에 묻히고 싶습니다. 그 전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종식되고, 통일도 되어서 다시 자유롭게 북한에 갈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지난 13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메리놀외방전교회 한국지부에서 사제수품 60주년을 맞은 함제도(제라드 E. 해먼드·88) 신부를 만났다. 함 신부는 “정진석 추기경님과 함께 청주교구 부주교로 있을 때 만났던 5살짜리 꼬마 아이가 이제 증평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했으니 세월이 참 빠르기도 하다”며 “원래 미국 메리놀회 본부에서 열릴 예정이던 축하 미사는 하늘길이 막혀 취소됐지만, 제2의 고향인 한국에서 60주년 축하를 받게 돼 더 기쁘다”고 말했다.
"제2의 고향 한국서 60주년 맞아 더 기뻐" |
미국 필라델피아 출신인 그는 1960년 8월 29일, 한국 나이로 28살에 한국에 첫발을 디딘 이후 평생을 한국에서 보냈다. 함 신부가 한국행을 선택한 이유는 친구 장익(장면 박사의 셋째 아들) 주교의 추천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을 함께 한 장 주교가 꼭 한국에 가 달라고 해서 무작정 한국을 지원했다고 한다. 사제수품을 받은 뒤 샌프란시스코에서 배를 타고 인천 월미도에 도착하기까지 꼬박 한 달 반이 걸렸다. 함 신부는 “한국은 당시 전쟁으로 폐허가 돼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한국인들이 참 고생도 많았다”고 당시를 회고하며 “당시 5명의 신부와 함께 왔는데, 지금은 다 돌아가시고 저 혼자 남았다”고 전했다.
함 신부는 한국에 온 뒤 청주에서만 29년을 보냈다. 그만큼 청주와 인연이 깊다. 청주교구 수동본당은 그가 조부에게 받은 유산 전액을 쏟아부어 세운 곳이기도 하다. ‘함제도’라는 이름도 이 때 지었다. “이화여대 교수에게 한국말을 배울 때 한국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는데 성 ‘해먼드’를 줄여 ‘함’씨에 이름 ‘제라드’를 줄여 ‘제도’가 됐다. 29년을 살았으니 사실상 내 고향이 청주라 청주 함씨로 지었다. 내가 시조인 셈”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은 그는 “은퇴 후에도 미국이 아닌 청주로 돌아가고 싶다. 청주에는 내가 죽어서 묻힐 묏자리도 마련돼 있다”고 했다.
1995년부터 북한 결핵 환자 지원하기도 |
1923년 처음 한국에 진출한 메리놀회는 국내에 천주교가 뿌리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1980년대 한국인 사제와 신자 수가 급격히 늘면서 해외 선교사들의 역할은 점차 줄었다. 메리놀회는 오는 2023년 한국 진출 100주년을 3년 앞두고 지난 3월 한국지부를 폐쇄했다. 1956년 9월부터 사용해 온 서울 광진구 중곡동 한국지부 자리도 한국 천주교에 내어줬다. 국내에 남은 총 8명의 메리놀회 신부들은 모두 고령의 원로 사제로, 본국으로 돌아가는 대신 한국에 남는 길을 택했다. “다리가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아직 건강하다”는 코로나19 이후 대방동성당에서 고해성사와 신학생 지도를 하는 등 지금도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모두를 힘들게 하는 코로나19을 극복하기 위한 메시지도 전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전염병이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코로나 시대를 맞아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생전 자주 하시던 ‘서로 사랑하고, 서로 관심을 갖고, 서로 배려하라’는 말씀을 되새겨야 할 때입니다.”
/글·사진=최성욱기자 secre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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