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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식 '평화민주론', 북핵 미완성 전제...남아공처럼 北 민주화 후 비핵화를"[청론직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핵 이고 살아가는 건 무의미...'민주평화론'으로 전환해야

대북전단은 빌미...운전자론 자처 文정부에 책임 떠넘기기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때처럼 북한 내부 민심 동요

굳건한 한미동맹 바탕 北 군사도발에 강력 대응 체제 필요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17일 서울 삼청동 극동문제연구소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하며 최근 북한의 연쇄도발 배경에 대해 “대내외 위기 속에서 내부 결속을 다지고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관계의 전환점을 마련하려는 시그널을 보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형주기자






북한이 지난 16일 남북화해의 상징인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면서 남북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북한은 17일 개성 등에 군부대를 재주둔시키고 서해상 군사훈련도 부활하겠다고 밝혔다. 4·27판문점선언에 이어 9·19남북군사합의까지 파기하겠다고 한 것이다. 조선중앙통신은 ‘서울 불바다론’을 다시 꺼내며 대남 협박에 나섰다. 지난 4일 대북전단 살포를 맹비난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담화 이후 북한은 갈수록 대남공세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남북관계가 2000년 6·15공동선언 이전으로 후퇴하면서 안보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이에 남북관계 전문가인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만나 북한의 도발 배경과 우리의 대응방안 등에 대한 견해를 들어봤다. 김 교수는 17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 자리에서 “북한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경제난 심화 등 대내외 위기 속에서 체제 내부 결속을 다지고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관계의 전환점을 마련하려는 시그널을 보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017년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 발사 이후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가운데 경제제재 완화를 얻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대화에 나섰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정상의 판문점회담과 북미 정상의 싱가포르회담 등에 나섰지만 무위로 끝나자 중재자 역할을 했던 문재인 정부에 책임을 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DJ(김대중 전 대통령)식 평화와 비핵화의 교환을 굳이 명명한다면 ‘평화민주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북한이 핵을 보유하기 전까지만 유효했던 카드”라며 “북한이 이미 핵을 보유한 이상 체제 민주화를 이룬 후 핵을 포기하도록 하는 ‘민주평화론’으로 대북전략을 전면 전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북한의 잇따른 군사 도발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대북전단은 빌미였고 애당초 남북대화를 끝내고 파탄을 내겠다고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대남사업을 대적(對敵)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선언한 후 연락채널 단절, 연락사무소 폐쇄·폭파 등 구체적인 조치를 취했다. 우리 정부가 정세 판단을 정확히 해야 제대로 된 해법이 나오는데 그동안 북한의 변화를 오판했다. 북한이 대북전단 살포를 비난하자 삐라금지법을 약속하며 북한 달래기에 나섰다. 상대편이 관계를 끊겠다고 선언했는데 엉뚱하게 대응한 셈이다. 북한이 지금까지는 저강도 도발에 그치고 있지만 향후 수위를 더 높일 가능성이 있다.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이다. 지금 상황만 놓고 보면 냉전시대를 벗어나 탈냉전시대로 갔다가 재냉전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와 통일부 등도 북한에 “강력 대응할 것”이라고 했는데 문재인 정부의 고민이 깊을 것 같다.

△지금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딱 두 가지다. 미국 눈치 보지 않고 한미관계가 깨질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북한에 통 크게 선물을 주든지, 아니면 김 위원장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고 한미공조 강화로 가든지 해야 한다. 결국 한국과 미국이 북한을 포위해 압박함으로써 북핵 폐기로 가야 한다. 그동안 운전자론을 내세워 북미관계를 개선하려 애썼지만 결국 무위로 끝났다. 문 대통령에게도 결단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렇게까지 강공을 펴는 북한의 속내가 궁금하다.

△김 위원장은 2012년 집권한 뒤 2017년까지 오로지 핵만 바라보고 질주했다. 2017년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 발사 이후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김 위원장은 상당한 자신감을 갖고 대미·대남협상에 나섰을 것이다. 하지만 협상은 생각만큼 순탄치 않았다. 국제문제는 상대가 있는 게임인데 상대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고 핵무력 완성까지만 참자고 다독였던 내부 민심도 흐트러지고 있다. ‘선(先) 핵 보유, 후(後) 협상’을 도모했던 김 위원장의 전략이 난관에 봉착한 것이다.

-북한 내부상황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데.

△국제신용평가사인 피치 산하 피치솔루션은 최근 보고서에서 북한 경제가 올해 -6% 역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북한이 ‘고난의 행군’ 시기인 1997년에 기록한 -6.5% 이후 23년 만에 최악의 수치다. 실제로 중국에서 들어오는 물동량이 줄면서 장마당이 크게 위축됐고 이는 북한 경제에도 큰 영향을 줬다. 일부 외신에 따르면 북한은 이르면 오는 2023년 외화가 고갈될 수 있는 상황에 처하면서 위기감이 커진 것으로 분석된다. 핵을 완성할 때까지 견디자고 인민들에게 희망고문을 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경제제재가 풀리기는커녕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치닫고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사태로 경제난까지 심화하면서 북한 체제 자체가 위기에 처했다.



-북한이 대남 공세 수위를 연일 높이는 것은 결국 미국에 신호를 보내는 건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문 대통령의 운전자론이 값진 성과를 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 입장에서 최종 종착지는 문 대통령이 아닌 미국이다. 당초 기대와 달리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나자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 당신이 책임진다고 했으니 책임지라’고 따지고 싶을 것이다. 김 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공격하기는 부담스러우니 만만한 문 대통령을 분풀이 대상으로 삼은 셈이다. 남한을 압박하는 동시에 미국에도 대화 메시지를 던지는 일석이조 효과를 기대했을 것이다. 안타까운 점은 20년 전 김대중 전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의 관계처럼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에 신뢰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김 위원장이 한국을 압박해 미국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다. 트럼프 행정부와 문재인 정부는 ‘소 닭 보듯’ 하는 관계나 마찬가지다. 문 대통령이 북미관계를 푸는 데 아무런 역할도 못하니 김 위원장이 (여동생을 통해 남한을 공격하면서) 정리해버린 셈이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17일 서울 삼청동 극동문제연구소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하며 최근 북한의 연쇄도발 배경에 대해 “대내외 위기 속에서 내부 결속을 다지고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관계의 전환점을 마련하려는 시그널을 보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형주기자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를 교환하는 문재인 정부의 ‘코리아 비핵화 모델’, 즉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성공하기 위한 조건은.

△그동안 전 세계에서 이뤄졌던 비핵화 선택지 가운데 남들이 가지 않은 우리만의 길을 가겠다는 게 ‘코리아 모델’이다. 핵과 평화를 교환하겠다는 건데 말만 들으면 그럴듯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경우처럼 ‘땅과 평화의 교환’은 가능하다. 하지만 핵과 평화의 교환은 말처럼 쉽지 않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자발적으로 핵 보유를 포기한 사례다. 핵무기를 개발했고 핵실험도 진행했지만 정권교체로 민주화를 선택한 후 비핵화 수순을 밟았다. 반면 인도와 파키스탄은 적대적 존재가 국경을 맞대고 있기 때문에 핵을 포기하지 못한다. 우리의 경우 남아공 모델처럼 민주화 체제 전환이 이뤄진 후 비핵화로 가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북한이 기존 체제를 포기할 가능성이 낮다. 문 대통령의 코리아 모델은 북한의 체제를 인정하면서 비핵화로 가자는 논리인데 북한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우월한 체제인 남한에 흡수될 수 있다는 ‘불안정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핵 포기는 쉽지 않다. 코리아 비핵화 모델을 비관적으로 보는 이유다.

-결국 북한의 체제 변화부터 이뤄져야 한다는 건데.

△현실을 냉정하게 봐야 한다. 북한 내 수령 독재가 지속되고 남북관계의 적대적 성격이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남북 간 평화체제가 구축됐다고 해도 이것이 지속 가능할까. 북한의 완전한 핵 폐기가 이뤄지지 않은 채 머리 위에 핵을 이고 살아가야 하는 평화가 과연 진정한 평화인가. 평화체제를 보장할 테니 핵을 포기하라고 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 그건 북한이 핵무력을 완성하기 전에나 유효한 접근법이다.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포기하고 체제를 인정하면 (북한으로서는) 굳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핵무력을 갖춘 지금 핵 포기 요구를 수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핵을 가진 나라와도 평화롭게 지내는 것은 가능하다. 바로 옆의 중국이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 권력 엘리트 간에 적대감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북한은 공존 대상이 아니다. 평화체제를 보장하면 핵을 포기할 것으로 보는 것은 매우 순진한 생각이다. 오히려 핵을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철통 같은 안보태세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단단한 한미동맹과 철저한 안보태세를 갖추고 대북협상에 나서야 한다. 시간은 어차피 우리 편이다. 시간을 두고 북한 내부의 변화를 기다리면 된다.

-우리 정부의 통일전략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렇다. DJ식의 평화민주론이 아닌 선 북한 체제 변화, 후 비핵화로 이어지는 민주평화론 전략으로 과감하게 전환해야 한다. DJ식 평화민주론은 평화체제를 먼저 정착시킨 후 북한의 민주화를 꾀하는 ‘평화와 비핵화의 교환’이다. 하지만 당시는 북한이 핵무력을 완성하기 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상황이다. 상황이 변하면 해법도 달라져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의 안보라인은 20년 전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그런 고집 때문에 국민의 안보마저 위협받는 사태가 왔다. 북한 체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 상태에서 통일을 이루는 것이 진정한 평화통일일까. 아니면 북한을 전략적으로 잘 관리하며 체제를 자연스럽게 변화시켜 민주화를 이루고 한반도가 동일한 가치를 추구하면서 통일되는 것이 평화통일일까. 어떤 게 진정한 평화통일인지 근본적 질문에 답할 때가 됐다. /정민정 논설위원 jminj@sedaily.com



1965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부터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2007년 노무현 정부 당시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통일협회 운영위원장, 국민공감포럼 대표 등을 지냈다. ‘새로운 통일 이야기’ ‘평화 오디세이’ ‘삶과 도전 그리고 미래’ ‘대북포용정책의 진화를 위하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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